[기자 수첩] 유전자 DTC 확대, 말과 행동 따로 노는 정부

[바이오워치]

[사진=Connect world/shutterstock]
미국 최대 유전자 분석 업체 23앤드미(23andMe)는 설립 10년 만에 기업 가치가 약 2조 원으로 치솟았다. 지난 8월 글로벌 제약사 GSK와 투자 계약을 맺으면서 올해(2018년) 기업 가치는 또 한 번 껑충 뛸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성장에 따라 대규모 채용도 잇따랐다. 올해 초 23앤드미는 200명의 신규 직원을 채용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가 4년간 신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로드맵으로 그리는 바가 이런 모습일 테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4년 후 23앤드미와 같은 성공 사례가 나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제도가 산업 활성화를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러 차례 소비자가 의료 기관을 거치지 않고 민간 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유전자 분석 서비스(Direct-To-Consumer, DTC) 규제를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실상은 몇 년째 같은 논의의 반복이다. 현재 유전자 DTC로 검사할 수 있는 항목은 체질량 지수, 혈당, 비타민 C 등 12개 항목에 불과하다. 처음 유전자 DTC를 허용한 2년 6개월 전, 그대로다.

유전자 DTC 검사 확대는 민간 기업의 무분별한 검사를 우려하는 의료계와 과학적 타당성을 의심하는 과학계, 다양한 검사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산업계 등 분야별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주제다. 이에 작년(2017년) 말부터 복지부는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민관 협의체를 통해 5개월에 걸쳐 가까스로 확대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개선안을 설명하는 공청회(4월)에서 다른 협의체 위원의 반발로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개선안을 최종 심의하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이미 협의체가 합의안을 마련한 뒤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는 8월 1차 회의에서 협의체가 마련한 개선안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폐기했다. 12일 열린 2차 회의에선 인증제 도입으로 관리만 강화되고, 항목 확대는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관리를 강화하되 시간이 너무 지연되지 않게 확대 방안도 같이 진행해 달라"는 업계의 조촐한 바람은 휴지 조각이 됐다.

정부는 입으로는 산업 활성화와 규제 개선을 외치지만, 정작 실행하는 손발은 입과 따로 노는 실정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면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을 잘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유전자 DTC 문제에 있어서 정부는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열린 공청회에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는 복지부가 꾸린 민관 협의체가 최종안을 결정하는 막바지 회의에서 일부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위원들을 배제했던 것이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인증 기준 등 민감한 부분이 복지부 임의로 작성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 2차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유전자 DTC 항목 규제를 내년 상반기까지 완화하겠다고 선언한 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와 어느 정도 합의가 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처 관계자는 "잘 설득해서 최대한 확대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정작 설득은커녕 앞으로 항목 확대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를 거치지 않겠다는 우회로를 선택해 위원들을 더 분노케 했다.

유전자 DTC 확대를 논의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증제 도입과 관련해 담당 기관과 인증 기준을 놓고 격론이 예상된다. 추가 확대 항목도 산-학-연 및 일반 시민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통해 다시 논의해야 한다. 첨예한 문제를 충분히 토의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재논의가 우려되는 이유는 올해처럼 기관과 사람만 바뀌어 가며 논의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결과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또 벌어질까 봐서다.

정부가 신산업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으로선 확대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이미 업계는 정부의 희망 고문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말로만 규제 개혁을 외치는 정부가 아니라 실행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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