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단식 캠프 같아"
미국의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연례 패션쇼는 이제 전 세계적인 이벤트가 됐다. 지난해 11억 명이 쇼를 시청했다. 재작년보다 45%가 증가한 폭발적인 흥행이다.
그러나 쇼에 참여했던 전직 모델들이 빅토리아 시크릿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2일 보도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런웨이 쇼는 1995년 시작했고, 2001년부터 매년 12월 미국에서 TV로 중계됐다. 쇼는 시작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2년 미국 최대 여성단체인 '전미 여성 기구(NOW)'는 "소프트코어 포르노 인포머셜"을 중단하라며 항의했다.
쇼를 참관했던 익명의 패션지 편집장은 "내가 본 쇼 중에 최악"이라고 평가하면서 "모든 모델이 똑같이 생겼고, 속옷은 너무 꽉 끼어서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보였다"고 토로했다.
몸매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독 빅토리아 시크릿의 쇼에는 하나같이 키가 크고 마른 모델들이 캐스팅되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회사, 엘 브랜즈(L Brands)의 마케팅 담당 임원 에드 라제크는 이달 초 패션지 보그와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모델을 쇼에 세우고 싶지 않다"면서 "환상을 깨뜨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사과해야 했다.
특히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기용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어떤 조처를 할 땐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다양한 체형을 기용한다면,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모델은 어떻게 하나"라고 반문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크릿과 독점 계약을 맺은 모델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델들은 이 말이 근력운동, 복싱, 줄넘기 등의 고강도 훈련을 의미한다고 털어놓았다.
패션모델들이 운동을 한다는 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델들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체중 및 체지방 기준이 일반 여성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닫는 건 문제다.
호주 출신의 이른바 '플러스 사이즈' 모델 로빈 롤리는 6년 전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당시 그는 랄프 로렌, H&M, 샹텔 란제리 등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활동하던 모델이었다.
그는 "풍만한 체형을 절대 기용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소문이긴 했다"면서 "당시 빅토리아 시크릿은 무슨 단식 캠프 같은 어처구니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기용된 모델들은 자신의 몸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밀어붙인다"면서 "그런 몸매를 평생 유지하고자 한다면 죽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쇼에 참가했던 모델들은 "무대에 서기 전 9일 동안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빅토리아 시크릿 측은 "모델들에게 식사와 관련한 어떤 지침도 제시한 적이 없다"면서 "우리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장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쇼의 모델이었던 에린 헤서튼은 “회사가 살을 빼라고 압력을 가한다”면서 “엄격한 식단과 체중 목표를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안 먹기 경쟁을 벌이는 서커스나 다름없는 이 패션쇼는 매년 인기를 더해가며 갈채를 받고 있다.
가디언의 기획 편집자 제니 스티븐스는 "개인적으로 이 쇼가 플라스틱 빨대나 비닐봉지처럼 사회적으로 보이콧되길 바란다"면서 "음식과 운동이 처벌이 아닌 웰빙의 요소로 장려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속에서 란제리 산업이 재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