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췌도 이식받게 해주세요" 당뇨병 환자의 외침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 아이는 6살 때부터 이 병을 앓았고, 환우회 내 소아 환자들 중엔 20개월, 심지어는 6개월 때 발병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례가 많습니다. 돼지 췌도를 인간에 이식하는 것은 제1형 당뇨병 아이를 둔 부모들에겐 한 줄기 희망입니다. 좋은 연구가 매장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29일 열린 당뇨병 치료를 위한 돼지 췌도 이식 임상 시험 공청회에 참여한 제1형 당뇨병 환자 부모의 호소이다. 환자 및 보호자들은 이종 이식 임상 시험이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세계 최고 기술력 갖췄지만, 법 사각지대 놓인 이종 이식
주로 소아에게 발병하는 제1형 당뇨병에 걸리면 하루에도 수차례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 평생 합병증의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한다. 미국에서만 10초마다 한 명의 당뇨병 환자가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치료법도 없는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췌도 이식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문제는 췌도 수급이다. 췌도 이식은 다른 고형 장기 이식과 달리 뇌사자 이식이 유일한 탓에 대기 기간만 평균 8년이 소요된다.
돼지 췌도 이식이 대안으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돼지 췌도는 인간의 것과 비슷하고, 면역학적으로 장점이 많아 동종 이식보다 부작용이 적은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쉽게 번식할 수 있어 수급이 용이하다.
국내 돼지 췌도 이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500억 원의 정부 지원으로 무균 미니 돼지를 다른 종에 이식하는 연구를 10년 이상 진행해 왔다. 당뇨 원숭이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한 결과, 이식을 받은 원숭이는 최장 1000일까지 정상 혈당을 유지했고, 안전성 면에서 특별한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돼지 췌도 이식의 동물 실험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을 통과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사업단은 인간을 대상으로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임상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황당하게도 이종 이식 임상 시험을 승인할 근거가 국내에 없어 표류하고 있는 처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이종 이식 제도가 마련돼 있어 적절한 규제 하에 이종 이식 임상을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 이종 이식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사업단은 간담회와 공청회 등으로 돼지 췌도 이식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강조하고 규제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제도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는 29일 열린 공청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왜 안 오나?" 無제도 상태에 뿔난 환자들
돼지 췌도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임상 시험을 실시하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규제 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 내 이종 이식을 담당할 부처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 보건 당국의 입장도 아직까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은 "식약처가 이종 이식을 세포 치료제의 일종으로 보고 해당 부처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에 대해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은 "식약처에선 췌도도 장기로 구분되기 때문에 세포 치료제에도 속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아직까지 식약처로부터 관련 부서를 할당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답했다.
이날 제1형 당뇨병 환자 및 보호자들은 지지부진한 보건 당국에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며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플로어에 있던 한 환자 보호자는 "제1형 당뇨를 진단받은 환자들은 가장 먼저 이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아 이번 공청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만사 제쳐두고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오늘 공청회에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한 곳인 식약처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주최 측이 식약처에 공청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식약처가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플로어의 다른 참석자도 "500억 원을 투자한 연구를 포기할 것인지 갖고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기다. 제일 나쁜 것은 연구 수준만 높여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혹은 정부 기관 중 한 곳이 주도적으로 나서 결정을 이끌어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Orawan Pattarawimonchai/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