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 간 영업사원, 왜?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 간 영업사원, 왜?

국내 제약 업계는 불법 리베이트를 뿌리 뽑겠다며 다양한 자정 활동과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리베이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굉장히 황당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에 출석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에 출석한 것은 의사가 원해서였다. 의사는 영업사원에게 대신 예비군 훈련 참석을 강요했다. 해당 의사가 있는 병원이 거래처였던 제약사 영업사원 처지에서는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업계 추측이다.

지난 3일에는 대구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됐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의약품 납품 대가로 상습적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로 울산에 있는 대형 종합 병원 의사와 의약품 도매상, 제약 업체 9개사 관계자 등 50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자사 전문 의약품을 납품하는 대가로 의사에게 총 3억80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제공했다. 의사 1인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2억 원이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기간도 비교적 최근인 2015년 상반기부터 2017년 7월까지였다.

제약 업계는 김영란법 시행, 경제적 지출 보고서, 강력한 부패 방지 시스템 ISO 37001 도입 등 불법 리베이트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 시행 중이다. 그런데도 불법 리베이트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 영업 사라지고 디지털 채널로

최근 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이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국내외 제약 산업 영업 마케팅 비용 지출 트렌드 분석 자료였다. 핵심은 전 세계 제약 영업 트렌드가 전통적인 대면 방식에서 디지털 채널을 이용한 온라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한국 등 총 35개국을 분석한 한국 아이큐비아 자료에 따르면 영업 마케팅 비용 지출 금액은 2012년 약 884억 달러(약 94조4000억 원) 대비 2016년 약 759억 달러(약 84조9000억 원)로 연평균 -4%씩 감소했다. 이런 감소 추세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급격하게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대면 영업, 세미나 개최, 샘플 지급 등 전통적인 영업 채널에 대한 비용 지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면 영업이 2012년 대비 2016년 약 79억 달러(약 8조8000억 원)가 감소했다.

사실 대면 영업은 필연적으로 혹은 부가적으로 리베이트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때문에 대면 영업 비용 지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줄어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대면 영업 비용이 줄어든 대신 디지털 채널인 온라인 마케팅 비용이 증가했다. 연평균 20%씩 성장해 2016년에는 전체 영업 마케팅 비용 지출의 3.4%인 약 25억 달러(약 2조8000억 원)를 기록했다.

변화 더딘 한국 제약 산업

문제는 한국이다. 글로벌 제약 산업을 이끌어가는 제약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디지털 채널로의 영업 트렌드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6년 기준 전체 영업 마케팅 비용 지출 상위 10개국은 일본, 미국, 브라질, 독일 등이 차지했다. 그 가운데 일본은 2013년 디지털 채널에 대한 비용 지출이 약 8억 달러(약 9000억 원)에서 2016년 약 16억 달러(1조8000억 원)로 연평균 성장률 27%, 35개국 평균인 23.85%를 웃도는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일본의 뒤를 이어 미국, 브라질, 독일이 20% 이상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한국 제약 산업의 디지털 채널 지출 비용 증가는 연평균 11.26%로 35개국 종합 연평균 성장률 절반가량에 그쳤다. 그마저도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 등 상위 10대 제약사 정도만 디지털 채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표는 몇몇 상위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영업사원이 의료진을 직접 만나는 대면 방식의 전통 영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리베이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돈다. 이미 국내외에서 팔리고 있고 처방 데이터와 임상 논문도 여럿 발표된 의약품에 대해 의사가 "자료가 부족해서 처방하기가 어렵다"고 공개된 자리에서 밝히자 업계에서는 "더 큰 혜택이 없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뭘 좀 주면 이야기 잘 해줄게"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내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불법 리베이트가 생각보다 교묘하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인 것.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것에는 한국 제약 산업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려먼 국내 제약 산업 파이 자체가 커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쟁 약이 많아 리베이트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복제약이나 도입 품목으로 매출을 늘릴 것이 아니라 신약을 통한 매출과 영업 이익을 개선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물론 업계에서는 올해(2018년)부터 시행된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로 인해 불법 리베이트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전통적인 영업 마케팅 활동이 상당 부분 제약을 받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산업 구조를 바꾸는 것이 상대적으로 중장기적인 과제라면 영업 방식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과제"라며 "국내외 제약 산업 영업 마케팅에 관한 트렌드 변화와 수치가 시사하는 점을 제약 업계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gettyimagesbank/MarianVejcik]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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