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덫에 걸린 'K-바이오', 셀트리온은 왜?
한국 바이오 산업이 '규제의 덫'에 걸렸다는 볼멘소리가 산업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회계 감리, 가이드라인 없이 규제에만 몰두?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개발비 이슈는 달리 적용해야 될 문제라서 일방적 잣대는 곤란하다. 업계 상황을 무시한 기준을 들이대면 바이오 기업의 신사업 의지가 줄어들 수도 있다." (바이오 기업 관계자)
최근 바이오 기업은 각종 회계 처리 문제로 쑥대밭이 되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선점하는 셀트리온의 경우 몇 달간 연구 개발(R&D) 비용 무형 자산 분류 문제로 금융 당국의 감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내용이 언급될 때 마다 셀트리온 주가는 출렁인다. 셀트리온과 투자자가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유다.
셀트리온은 2017년 기준 바이오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2270억 원의 연구 개발비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74.4%에 해당하는 1688억 원을 무형 자산으로 분류했다. 이에 금융 당국은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본다며 몇 달째 회계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내에서는 금융 당국의 일방적인 잣대로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제약 바이오 산업을 육성한다면서 지나친 규제를 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반응까지 감지되고 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 특성상 실패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 무형 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셀트리온은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 1038호가 제시하고 있는 무형 자산 인식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신약 개발 성공률이 극히 낮은 바이오 신약 등의 개발 과정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을 똑같이 인식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제2차 제약 산업 육성 정책'에서는 그 어떤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찾아 볼 수 가 없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를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바이오시밀러 혹은 바이오시밀러를 취급하는 기업과 관련한 회계 가이드라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규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회계 감리를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 역시 바이오 기업에 대한 명확한 회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겠다며 몇 달째 바이오 업계와 투자자에게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는 그대로, 필요한 시스템은 전무
"바이오시밀러 신속한 허가와 출시를 위해 정부가 허가 심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방규호 경남과학기술대 교수)
지난 10일 코엑스에서 정부 주도로 열린 '바이오 코리아 2018'에서는 정부를 향한 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참석한 국내 대학 교수와 제약사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의 신속한 허가와 출시를 위해 정부가 허가 심가 규제를 완화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의약품 제조에 동일한 방법과 장비를 사용함에도 제조소를 변경하면 최초 신고와 동일한 방대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의약품 시장 선진국인 유럽의 경우 의약품 제조 공장을 옮겨도 변경된 부분과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만 검증하는 자료만 제출하면 된다.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의약품 제조 공장 변경 시 제출하는 자료가 너무 많아 시정 요청을 여러 번 했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바이오 산업을 위해서는 이런 사소한 규정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발 속도와 허가 기간이 관건인 바이오시밀러 특성상 국내의 이런 불필요한 규정과 규제로 성공적인 해외 진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셀트리온이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미국과 유럽 시장을 선점하기까지는 타 바이오 제약사보다 신속한 개발 속도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반면 바이오시밀러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뒷받침할 정부 차원의 시스템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의약품 선진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개발 초기부터 의약품 유통까지의 체계적인 품질 관리와 공급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현재 이런 시스템이 없는 것이 현실. 이런 부분은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손진법 동아제약 DM 바이오 이사는 "바이오시밀러 등 바이오 의약품은 매우 민감한 특성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유통과 공급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바이오시밀러는 품질 유지와 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에 눈물짓는 바이오 벤처
제약 바이오 산업을 정부가 적극 육성키로 하면서 한국거래소도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에 대한 코스닥 시장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풍부한 자본과 실적이 없는 바이오 벤처 특성상 기술평가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진입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 10일만 하더라도 바이오 벤처 브릿지바이오는 기술평가특례상장 예비 심사에서 떨어졌다. 기술 사업성 평가를 신청해 복수의 평가 기관 현장 실사를 받았지만 한 곳에서만 A등급을 받으며 탈락했다. 기술성 평가는 전문 평가 기관 2곳에서 A등급이나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신약 후보 물질을 사들여 임상 시험 후 다시 되파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많은 벤처 캐피탈(VC)에서 수백억 원을 투자 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한국거래소는 외면했다.
업계에서는 브릿지바이오의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규정 적용보다 나날이 발전하는 바이오 산업과 기업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진=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