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C는 시대적 흐름, 사기꾼으로 매도 말라"

[DTC 규제 완화, 찬성한다] 이숙진 마크로젠 개인유전체사업부문장

비의료 기관(민간 유전자 검사 업체)도 소비자 의뢰에 따라 유전자를 검사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제도를 하루 빨리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16년 6월 30일 처음으로 콜레스테롤, 혈당 등 12개 항목 46개 유전자에 대해 DTC 검사를 허용했다. 하지만 의료계 등의 반대로 지나치게 범위가 협소해져 검사 의미가 극히 미미하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지난해(2017년) 11월 민관 협의체를 꾸리는 등 제도 개선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런데 지난 4월 30일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는 공청회에서 오히려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특히 민관 협의체 과학계 위원 2인 가운데 1인이었던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현 DTC 검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고, 중재를 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산업계는 단편적인 잣대로 DTC 산업을 판단하기보다, 빨리 제도를 정비해 현장에 적용하고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대로라면 국내 산업 활성화는커녕 편법만 조장한다는 것. 민관 협의체 산업계 대표로 참여했던 국내 유전체 분석 기업 마크로젠의 이숙진 개인유전체사업부문장을 통해 DTC 규제 완화의 필요성과 방향을 들어 봤다.

"단편적 잣대 평가, DTC 산업 부정하는 것"

- 공청회에서 DTC 검사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학적 관점에서만 봤을 땐 그런 지적이 틀리지 않다. 처음 유전자 검사가 시작된 건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진단의 영역에서 유전자 검사는 정확한 근거 하에 임상적 유용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예방 목적의 DTC 검사 영역은 다르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하게 타고났는지 파악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하고자 유전자 검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질병의 진단, 예측, 웰니스 등 영역에 따라 과학적 근거의 기준도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 그걸 무시하고 하나의 잣대로만 산업을 평가하는 건 DTC 산업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예방 목적 DTC 검사는 어떻게 다른가?

"DTC 검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유전자라는 하나의 요인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특정 운동을 했을 때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는 근거 문헌이 있다. 따라서 유전자에 따라 어떤 운동을 위주로 하면 더 효과적인지 결정할 수 있다.

또 지금은 여러 건강 기능 식품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뭔지 판단하기 힘든데, DTC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전적으로 어떤 성분의 대사 기능이 떨어지는지 파악해 해당 성분을 보충할 수 있다.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게 나오면 식습관을 채소 위주 식단으로 바꾸고, 대장 내시경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이렇게 식습관, 음주, 흡연, 운동 등 유전적으로 자신에게 더 해악이 될 수 있는 습관을 개선해 건강을 챙기도록 하는 것이 DTC 검사 목적이다. DTC 검사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일반적으로 유전자 검사는 과학적이고 정확도가 높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DTC 검사 역시 정확도가 높아야 한다는 시선이 있는데.

"처음 이 서비스를 시작할 때 설문 조사를 해보니 유전자 검사를 들어본 사람은 매우 많았지만, 대부분 친자 확인이나 범죄 수사 등이었다. 그래서 DTC 검사를 의료 행위와 비교하고, 의료적 가치가 뭔지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DTC 검사는 생활 습관을 개선해 나의 환경을 바꿔보자는 하나의 시그널이다. 당장 질병을 발견해 수술하는 정도의 검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의료적 잣대로만 판단하는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 미국은 유전자 검사를 전면 금지했다가 유방암과 치매 등 유전자 영향이 큰 질병 예측에 대한 항목을 열어주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개선안에도 그런 질병 쪽은 여전히 닫혀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가야 한다. 다만 시기적으로 DTC 검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자리 잡은 후에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직 소비자들이 DTC 검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 번에 모든 걸 열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그렇게 유전자 영향이 높은 질병들은 대부분 난치병이라 미리 안다고 해서 개선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질병 예방 항목을 열어주는 것에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도 윤리적 부분 때문이다. 난치성 질환이 앞으로 생길 것이란 결과를 알려주는 게 정말 소비자를 위한 행동이냐는 것이다. 의료계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질병 예측에 대해 검사하더라도 치료제가 있는 질병에 대해 해야 한다고 본다."

"원점으로 돌아간 공청회, 업계는 좌절"

- 개선안을 발표하는 공청회인데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공청회 참관 후 솔직히 더는 국가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나 싶었다. DTC 검사를 제대로 해보려는 기업은 합법적인 룰 안에서 하고자 지금까지 규제 개선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달라지는 건 없고, 사기꾼으로 호도되기만 했다. 복지부가 현재 적극적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복지부가 개선안에 대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고, 이 틀 안에서 윤리계나 법조계 의견을 받아 세부적인 조정을 해야 논의가 진척된다. 그런데 공청회는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돌아가 왜 DTC 검사를 해야 하느냐는 원론적인 얘기부터 오갔다. 지금까지 논의에 참여했던 입장으로선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공청회 이후 국내에서 업계가 제대로 활동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협의체 논의가 의료계와 산업계 간 영역 다툼이 대부분이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의료계는 질병의 영역을 DTC로 검사하는 것을 의료 행위라고 간주하고, 전문가를 통해 결과를 듣지 않으면 오해석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이야기긴 하나 현재 한국은 미국의 '제네틱 카운슬러'처럼 제대로 해석과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의사들이 부족하다. 도리어 뭐라고 설명하면 되냐고 묻는 의사들도 일부 있다.

의료 기관을 통해 유전자를 검사하면 같은 검사라도 검사비가 두 배가 된다. 의사들이 제대로 설명과 해석을 해준다면 그 비용이 충분히 의미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소비자들이 좀 더 저렴하게 검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그 방향이 훨씬 효용이 높을 것이다."

- DTC 기관에 대한 인증제 도입에 산업계도 찬성하나?

"2016년 DTC 검사가 허용된 이후 30개 이상의 민간 유전체 검사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무분별하거나 결과를 부풀리는 기업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자체적으로 업계 실태 조사를 해보면 일본 등 검사 항목에 제한이 없는 국가에 유령 법인을 차려놓고, 해외로 샘플을 보내는 척하면서 실제론 한국에서 검사를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정작 그런 기업들은 전혀 제재할 방법이 없다. 유전자검사평가원에서 매년 업체 실사를 통해 등급을 부여하는데, 일부만 실사를 받거나 아예 실사를 거부하는 곳도 많다. 제대로 룰을 지키는 기업에 자유를 줘야 하는데, 반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제도 정비를 외치는 기업들만 바보가 된 셈이다."

DTC 산업 시대적 흐름, 선개혁-후제재 도입

- 아직 관련 학계에선 DTC 규제 개선에 대한 우려가 큰 것 같다.

"일본에서는 DTC 검사 항목의 제한이 전혀 없는데,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례가 없었다. 해보지 않으면 진짜 어디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정말 우려일 뿐이다. 현재 DTC 업계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관리 감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 외의 우려는 직접 해본 후에 실제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엄격하게 제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 향후 DTC 제도 개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중요한 건 시점이다. 계획대로만 가도 2년이 넘게 걸린다. 빨라야 2020년 하반기나 되서야 산업계가 바뀐 제도에 맞게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지금도 격차가 현저히 벌어지는 상황에서 2~3년의 시간은 치명적이다. 유전자검사평가원의 엄격한 실사를 통해 A등급을 받은 기업에 한해선 시범 사업으로 선정해 제도 개선과 적용을 병행하는 방향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DTC 검사는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비 지출이 점점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예방 비용을 들여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고 의료비를 절감해보자는 시대적 요구이자 흐름이다. 그 흐름에 맞추지 못하고 뒷북을 치고선 국내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DTC 업계뿐만 아니라 의료계도 준비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유전자 검사를 받고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의료계가 갖춰야 한다."

[사진= metamorworks/shutterstock]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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