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병원 폭력'은 교육이고 '군대 폭력'은 범죄인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대형 병원 간호사가 서울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그 원인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숨진 간호사 A씨의 남자 친구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A씨의 죽음을 선배 간호사의 이른바 “태움”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영혼을 태운다'라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의 괴롭힘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태움'인지는 조사 중이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19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 “유족이나 남자 친구가 병원 내 괴롭힘으로 투신했다는 진술을 했다”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A씨의 남자 친구에 따르면 그녀는 평소 대화 중에도 “출근하기가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 등의 표현을 자주 했다고 한다. 죽은 A씨의 유서라고 추정되는 휴대폰 속 메모에는 “업무에 대한 압박감”, “(선배 간호사)의 눈초리”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등의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접적인 원인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는 불확실하다. A씨가 근무하던 대형 병원도 자체 조사 후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는 A씨가 평소 호소했던 직장 내 괴롭힘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병원 내 만연한 직종, 직급에 따른 상하 위계질서가 초래한 '갑질'의 폐해를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 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71.2%는 언어 폭력을, 20.3%는 신체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3년 '정신간호학회지'에 발표된 '병원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직무 스트레스가 이직 의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의 60.9%가 근무 기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괴롭힘을 경험한 시기는 근무 경력 1년 이내가 58.1%나 됐다.
실제 사례도 많다. 작년(2017년)에는 부산대병원에서 전공의 폭행 사건이 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2년간 전공의 11명을 상습적으로 구타했다. 정형외과 안에서 폭행 사건을 무마하면서 병원 측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다. 올해는 간호사가 목숨을 끊었고, 그 원인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런 병원 내 폭력은 특징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직적 '내리 갈굼,' 외부와 격리된 공동체의 관행이었던 점, 가해자와 피해자 또 심지어 제3자의 일부도 도제식 교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점, 이런 폭력이 생명과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다는 점 등.
그런데 바로 이런 병원 내 폭력과 흡사한 폭력이 또 있다. 바로 군대 폭력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군대 폭력을 놓고서 “공동체의 관행” “도제식 교육” “생명과 안전을 위한 교육”이라고 옹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냥 말 그대로의 '폭력'이고 심하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범죄'일 뿐이다.
'교육'이든 '태움'이든 '폭력'이든 지금 병원에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고, 어떤 곳보다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곳이다. 그런 곳에 근무하는 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적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