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핵심은 "위험 관리"와 "갈등 조정"
[국가생명윤리포럼] "생명윤리법보다 공론화가 우선해야" 토론도
"생명윤리법은 기본적으로 윤리가 아니고 법이기 때문에 윤리적 쟁점을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의 조정·관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일 제2회 국가생명윤리포럼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개정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포럼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주최로 열렸으며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주관했다.
이날 포럼은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원장의 생명윤리 민관 협의체 경과 보고에 이어서 김현철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생명윤리법 개정 방향에 대한 주제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에는 김연수 충남대학교 신약전문대학원 교수,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강형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황만성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정옥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연구부교수, 정재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원장, 김환석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박미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과장이 참석했다.
의료, 윤리, 법학, 산업, 종교, 과학계 전문가와 정부로 구성된 생명윤리 민관 협의체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주요 쟁점별로 8차례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다. 협의체는 유전 정보, 유전자 편집 등 생명과학 주요 기술의 특징과 사회 변화, 정책 방향 등에 대해 다뤘다.
이윤성 원장에 따르면, 그간 협의체 활동을 통해서 생명윤리법이 구체적 행위를 규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며, 과학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합리적 논의와 근거에 바탕을 둔 규제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하지만 협의체 내에 규제 완화 요구와 그 위험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고, 현황과 전망에 대한 명확한 파악 없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에 거부감 때문에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아니라 개정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친 한계도 있었다.
생명윤리법, 장기적 위험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필요
이어진 김현철 교수의 발표도 생명윤리법의 개정 방향을 주제로 이뤄졌다.
김현철 교수는 먼저 "생명윤리법이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규제는 금지도 포함하고 지원을 할 수 있고 역량을 북돋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윤리법이 생명과학 연구에서 위험을 규제하거나, 연구를 위한 절차를 만드는 2가지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김 교수는 생명윤리법이 윤리적 쟁점에 대한 갈등을 조정·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갈등 조정은 생명과 인권 존중,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 사회의 공통 가치 기반에서 이뤄지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통의 가치 기반을 확산하는 것도 생명윤리법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가치 기반을 확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연구자와 시민이 생명 윤리와 관련된 정보를 내면화하고 의사소통하기 위해 이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연구자들의 역할과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생명과학기술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과학자 스스로 생명 윤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역량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공론장 마련이 제시됐다. 역량이란 일방적으로 정보를 주입한다고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공론장의 사회적 수용성과 권위를 높이기 위해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참여자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며, 공론을 위한 기초자료가 적절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초 자료 마련을 위한 방법으로 기술영향평가가 실질화되고, ELSI(윤리, 법, 사회적 영향)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ELSI 연구를 통해 생명과학 연구진과의 중장기적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생명윤리법의 구체적 적용 방안으로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보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생명윤리위원회 제도를 개편해 위험이 높은 연구에 대해서는 전문심의위원회 제도를 도입하고, 공동 연구와 개인 연구의 증가에 대응해 특정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공용생명윤리위원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ESLI와 기술영향평가 제도 신설, 시민과 연구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조항, 위험의 모니터링과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어진 토론에서는 현행 법률의 모호한 규정으로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과 법을 지킬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또 연구자들의 역량 강화를 통한 자율 규제가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 공론화를 위한 공동 가치 기반을 만드는 활동과 법이 생명윤리법보다 앞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 공론화를 위한 위원회가 위원 구성에 따라 편향성을 가지고 운영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 등도 이뤄졌다.
한편, 이날 열린 포럼과 최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소가 주도하고 있는 생명윤리법 개정 방향과 방법에 대한 사회단체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은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해 지난 정부부터 생명윤리법 개정 방향이나 의료 빅 데이터 활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왔는데, 문제를 기존 논의의 재검토가 아니라 시민 참여로 해결하려는 것에 비판적이다"고 지적했다. 앞선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내용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단체를 참여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부소장은 "그 동안의 회의 내용 등을 공개하지 않는 등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김 부소장은 "생명윤리법 개정을 주도하는 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보건복지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중립적인 의견 수렴 통로인지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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