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 대한 페티시즘...남자의 눈치 보기

찻집의 은밀한 만남을 엿보는 느낌

목덜미에 대한 페티시즘...남자의 눈치 보기

〈찻집 위층방의 연인들〉(1788. 대영박물관),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磨,1753~1806)

[배정원의 춘화여행] ④ 찻집 위층방의 연인들

남녀가 한창 사랑에 빠져 있다. 여자는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남자의 얼굴을 부여잡고 달콤한 입맞춤에 열중하고 있다. 에도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옆은 부풀리고 위는 곱게 틀어 올린 머리단장과 젖혀진 기모노의 깃 사이로 드러난 하얗고 가녀린 목덜미가 고혹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자의 얼굴도 여자의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있다.

사랑을 나누는 뒷모습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달아오르게 할 만큼 둘의 몸짓은 묘하게 시청각적이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여인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아~아…,’ 간드러지게 흘러나오는 교성이 들리는 것만 같으니…. 

게다가 성행위 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듯, 최소한으로 노출한 그녀의 엉덩이는 탐스럽지만 아기의 것처럼 보드라워 보인다. 수줍어 보이는 그녀의 상체와는 달리 그녀의 날씬한 다리는 남자의 허벅지를 소나무를 휘감은 칡넝쿨처럼 휘어 감고 있다. 드러난 것은 하얀 엉덩이 밖에 없는데, 그림은 예사롭지 않은 에로티시즘을 표현한다. 흘러내린 옷들의 선이며, 옷의 색감, 두 주인공의 세련된 구도는 현대 회화에 못지않다.

이 그림은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磨,1753~1806)의 〈찻집위층방의 연인들〉이다.

우타마로는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시(浮世繪師;우키요에 화가)로 일본에서는 ‘미인화(美人畵)’를 대표하는 이름이고, 일본 밖에서는 우키요에 자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우키요에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서민 생활을 주로 표현한 회화의 양식이다.

그는 가츠시카 후쿠사이와 함께, 19~20세기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 바람 ‘자포니즘(Japonism)'의 대표화가라고 할만하다. 1997년에는 프랑스에서 ‘박물관 보물(Museum Treasures)' 주제의 주화(鑄貨) 시리즈에 그의 작품이 선정되기도 했다.

18세기 말에 우키요에 세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우타마로는 주로 유곽의 유녀들을 그렸다. 특히 여인의 상반신을 강조하는 ‘오쿠비에(大首畵)’를 즐겨 그렸다. 카메라가 피사체를 줌인 하듯 여인의 상반신과 얼굴을 주~욱 당겨 화면을 가득 채웠고, 얼굴과 손의 묘사는 여인의 심리를 풍부하고 섬세하게 투영했다.

대체로 일본의 춘화는 두루마리에 그려졌으며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성교육용으로 주어지거나 무사가 부적으로 몸에 지니는 용도였지만 우타마로의 그림은 이보다는 풍속화에 가까워 보인다.

우타마로는 유곽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질 만큼 유곽의 여인들과 가까웠다. 그는 주로 유녀와 찻집의 얼굴마담격인 ‘간반무스메(看板娘)’ 미인들을 섬세하고도 우아하게 그렸다. 당시 에도시대의 서민들은 실제로 만날 수 없는 미인들을 그림으로나마 접하는 미인도에 열광하였다.

우타마로는 ‘우타마로’와 ‘마쿠라에(枕繪=春畵)’를 합쳐 ‘우타마쿠라’라는 춘화집을 냈을 정도로 일본 포르노그래피를 대표하는 화가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자.

그림 속의 장소는 에도시대에 매춘이나 은밀한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던 찻집의 2층이다. 뻗어 오르는 나뭇가지들은 찻집의 2층을 묘사하지만, 한편으로 여인의 몸을 향한 남자의 솟구치는 열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림을 가로지르는 난간은 대각선으로 뒤엉킨 남녀의 구도를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또 뒷모습을 그리기 좋아했던 우타마로이기도 했지만, 잘 빗어 올린 머리모습 때문에 더욱 강조되는 매끄럽고 요염한 하얀 목덜미는 옷 속에 숨겨진 여인의 향기로운 살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뒷모습, 특히 여인의 목덜미에 대한 페티시즘은 일본 미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인의 살짝 드러난 뒷덜미에 코를 살짝 갖다대면 옷으로 감춰진 성숙한 몸에서 풍겨나오는 달큰하고 향기로운 살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란 농염한 상상도 어렵지 않다.

그림 속 여인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남자의 손에는 곧 여인의 몸을 샅샅이 애무하려는 남자의 달뜬 마음이 녹아있다. 두 남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자세히 보면 여인의 부푼 옆머리 밑으로 남자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보인다. 무엇을 염탐하는 듯한 눈초리가.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부채가 펴져 있다. 이 부채는 사실 이 두 남녀의 섹스진행상황이나 분위기를 알려주는 고마에(駒繪)가 적혀 있는 단초이다. 흥미롭게도 남자가 든 부채에는 이 무렵 문인인 이시카와 마사모치(石川雅望)의 시가 쓰여 있다.

“蛤にはしを しっかとはさまれて, 鴫立ちかぬる秋の夕ぐれ”

“가을날은 저무는데, 도요새는 부리를 대합에 붙들려 날지 못하네.”

이 시는 교카(狂歌,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와카의 일종)이다. 시로 미루어 남자는 마음은 바쁜데, 여자에게 붙들려 진도를 못나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에 갈 시간이 바쁘다는 것인지, 아니면 삽입 및 사정까지의 섹스의 종착지로 가기에 바쁘다는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림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후자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몸 구도로 보면 삽입하기엔 남자의 하체와 여인의 그곳이 멀고 기껏해야 남자는 부채의 손잡이쯤에서 여자의 음부를 애무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어떡해야 남자의 애간장을 닳게 하는지 요령을 잘 아는 ‘찻집의 여인’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인의 열렬한 키스에 붙잡혀있다. 언제쯤 여인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지 곁눈질을 하면서.

남자의 섹스는 이렇다. 성학(Sexology)에서도 삽입의 시기는 여자가 정하는 때가 적기라고 본다. 안절부절못할지라도, 벌써 뜨거워졌을지라도 여자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자가 허락해야만 비로소 진입이 가능하고, 그제야 하나가 될 수 있는 섹스의 여정에서 남자의 눈치 보기는 현재도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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