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은 '황우석 설계자'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강양구의 '바이오 워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을 반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차관급이지만 장관 못지않다. 약 20조 원에 이르는 국가 연구 개발(R&D)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실권을 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과학기술계에서는 이 실세 차관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관심사였다. 더구나 차관급인지라 인사 청문회도 필요 없다.

박기영 교수는 2005년 황우석 박사가 논문 조작 사건으로 몰락할 때,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김병준(金) 청와대 정책실장, 진대제(陳) 정보통신부 장관과 어울려 노무현 정부의 황 박사 지원에 앞장서서 한때 '황금박쥐'로도 불렸던 당사자다. 조작 논문으로 밝혀진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는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사태 내내 침묵을 지키다 논문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서야 과학기술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났다(2006년 1월). 그리고 오뚝이처럼 1년 만에 다시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위촉됐다(2007년 1월). 나랏일에 복귀하면서 그가 언론과 했던 인터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에 물러났던 일을 놓고서 "과학적으로 큰 사태가 벌어졌으니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정부 쪽 책임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글쎄, (매를) 맞을 만큼 맞지 않았나" 언급도 했다. 보통 사람이 흔히 말하는 "반성" 같은 표현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기영 교수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둘러싼 상황만 놓고 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당시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는 박 교수가 2004년 논문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조작 논문의 바탕이 된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탓에 박 교수는 결과적으로 논문 조작에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여하지 않은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이언스>에 실린 화제의 연구에 이름을 올린 박기영 교수의 당시 처신을 놓고서 과학계에서는 "논문 무임승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연구비를 몰아주고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신종 향응"이라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박기영 교수는 자신이 2004년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의 "공동 연구"를 했음을 역설했다("연구 윤리에 조언을 했기 때문에 (공동 저자 등재) 제안을 받아들였다.") 박 교수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그는 2004년 조작 논문의 명백한 책임자다. 논문 조작은 가장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이니까.

십분 양보해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에 직접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박기영 교수가 '황금박쥐'의 일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홀려서 황 박사에게 연구비를 전폭 지원한 정황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그는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치권에 계속 기웃거리다 이렇게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런 박기영 교수의 처신은 누가 봐도 '적폐' 청산의 대상이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적임자는 아니다.

박기영의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인가?

박기영 교수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 사실이 알려지자 "1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기회를 한 번 주자"는 얘기도 있고, "지난 10년간 관료가 쥐락펴락했던 과학기술 행정을 '실세' 과학자가 주도할 기회"라는 호의적인 해석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려는 지지자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금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른바 수십 년간의 기조였던 '선택'과 '집중'의 실패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특정 과학기술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 그럭저럭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꽁무니를 쫓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결과 선택 받지 못한 기초 과학을 비롯한 과학기술 전반이 고사 직전의 위기에 빠졌다.

그나마 한때 선택 받은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게 유행이다 보니, 선택을 받고자 유행을 좇는 행태가 만연하다. 그나마 수혜자가 된 운이 좋은 과학자는 그에 상응하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도 그런 나쁜 시스템과 나쁜 개인의 일탈이 조우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박기영 교수가 누구인가?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핵심 입안자로 '뜰 것 같은' 황우석 박사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등 이런 나쁜 시스템을 앞장서서 만들었던 당사자다. 말하자면 그는 '황우석 설계자'였다. 이 나쁜 시스템은 노무현 정부에 이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더욱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박 교수에게 20조 원의 연구 개발 예산을 분배하는 막강한 권한을 다시 주자고?

장담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코드'를 맞추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곰 같이 연구를 해오면서 여우같은 행정 능력도 갖춘 현장의 과학기술자가 수두룩하다. 당장 나부터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맡으면 박기영 교수보다 백 배, 천 배 잘할 수 있는, 과학계도 대환영할 인사를 최소한 셋은 추천할 수 있다.

사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연구비 나눠 먹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 선택과 집중의 과학기술 정책이 낳은 최악의 괴물은 각종 사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연구비 나눠 먹기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나 학문 후속 세대 육성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에게 줄을 서야 나눠 먹을 연구비를 따 올 수 있을지 궁리한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여기저기 박기영 교수 앞에 줄을 섰다는 과학기술계 인사가 여럿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박 교수는 과연 이런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때의 과학기술 정책을 염두에 두면 회의적이다. 그러고 보니, 박 교수는 모교의 같은 학과 동문 선배다. 오죽하면, 까마득한 후배가 이렇게 작정하고 선배를 비판하고 나서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을 재고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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