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행복한 상상’
델라와 스쿠르지: “크리스마스 선물과 크리스마스 캐롤”
이재태의 종 이야기 – 58. 델라와 스쿠르지: “크리스마스 선물과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에는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구세군 냄비에 정성을 보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축하 카드와 선물을 나눈다. 아이들은 전날 밤에 굴뚝으로 들어온 산타클로즈 할아버지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선물을 가득 넣어주고 갈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썰매에 매달린 방울 종을 징글벨(jingle bell)이라 하는데, 크리스마스 장식품과 카드에는 산타클로즈의 징글벨이 빠지지 않는다. 1857년 미국의 제임스 피어폰트가 작곡한 캐롤인 ‘징글벨’이 소개된 뒤, 징글벨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다신교를 숭배하던 로마 시대에는 일 년 중 낮이 짧고 밤이 가장 긴 12월 17일에서 23일 사이인 동지 근처에 로마의 신(神) 새턴(Saturn)을 섬기는 축제가 열렸다. ‘새터나리아(Saturnalia)’라 불리던 이 날은 모두가 흥겹게 술을 마시고 환락적인 축제를 벌였다.
이어진 12월 25일에는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축제가 시작되는데, 이날은 동지 동안 죽어있던 태양이 다시 하늘로 떠오르는 날이며 정의의 태양이자 빛의 신인 미트라의 생일로 믿어졌다. 로마인들은 이때에는 집안을 상록수 넝쿨과 촛불로 장식하고 어린이와 가난한 사람과 노예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은 AD 4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375년 쥴리어스 1세 황제의 로마 교회는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로 밝혀졌다고 공표하였고, 이후 이날은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로 결정되었다. 몇몇 고위 성직자들이 새터나리아 축제와 미트라의 생일 근처를 예수의 탄생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반대하였으나, 로마 교회에 이어 결국 440년경 예루살렘 교회도 이를 수용하였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이러한 선물을 주는 풍습이 계속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동방박사가 아기예수를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약제)을 선물로 드린 것을 되새기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교환하는 전통이 생겼을 것으로도 추측된다.
(좌. 징글벨이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 1950년대, 우. 왈레스 사의 은빛 징글벨, 1975년)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중 대학 졸업자 수가 15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 실업은 우리사회의 또 다른 아픔이 되었다. 현자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맞는 청년들은 가슴 뿌듯한 설렘보다는 현실적인 부담감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젊은 연인들의 애틋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오 헨리(O. Henry, 1862-1910,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먼저 떠오른다. 저자는 이 소설을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선물”을 모티브로 쓴 작품이라 하였고, 원 제목은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이다. 글의 끝부분에 “이들 부부의 선물은 동방박사들이 예수께 드린 선물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라는 마지막 설명이 붙어있다.
어깨 넘어 앞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의 이 여인은 ‘델라Della’이다. 델라는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젊은 여주인공이다. 제리 발랜타인이 주조한 청동종의 몸체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 했던 꽃장식이 된 머리빗이 새겨져있다.
소설은 “1달러 87센트, 이것이 나의 전 재산이었다. 게다가 그 중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이다”라고 시작된다. 델라와 남편 짐은 19세기 미국 도시에 사는 젊은 부부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평범한 연인인데, 이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였으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주 8달러의 가구 딸린 아파트에서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에게 매우 소중한 보물을 한 가지씩 지니고 있었다. 델라에게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긴 금발을 늘 소중하게 손질하는 기쁨이 있었다. 짐에게는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금시계가 있었으나, 시곗줄이 없었기에 차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델라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었으나, 그녀가 가진 돈은 1달러 87센트가 전부였다. 그녀는 고심 끝에 아끼던 자신의 금발을 잘랐고, 머리카락을 팔아 받은 돈으로 짐의 금시계에 어울리는 멋진 시곗줄을 준비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라온 짐은 델라의 출렁이던 금빛 머리카락이 잘려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델라가 뿌듯한 표정으로 ‘오늘 머리카락을 팔아, 당신에게 드릴 선물로 시곗줄을 샀어요’라고 말하였다. 짐도 고개를 푹 숙이며, 안주머니에서 포장지에 싼 선물을 꺼내 놓았다. 아주 값비싼 머리빗 세트였다. 델라의 긴 금발을 가꾸기 위하여 자기가 지닌 유일하게 값나가는 물품이자 아버지의 유산인 금시계를 팔아서 마련한 선물이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서로에게 주기 위하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팔아서 선물을 마련한 것이다.
델라는 말한다. “걱정마세요. 나의 출렁거리는 머리는 곧 다시 자랄 거예요.” 짐은 “이 선물들이 쓸모없다고요? 이 시곗줄이 없었다면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고, 이 빗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예요. 오늘은 우리 둘 만을 위한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요”라고 위로한다.
(좌. 델라Della 청동종, 발랜타인 작품, 우. 크리스마스 선물의 원작 “The Gift of Magi”)
조각가 발랜타인은 1년에 1-2개씩 인물을 주제로 한 청동 종을 제작하여 평생 동안 41명의 다양한 문학과 역사 속의 사람들을 새겨 두었다. 그 청동종의 주인공 중에서 나에게 가장 낯선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델라’였다. 나는 아마도 일반적인 미국인의 마음속에 진하게 기억되어 있는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인물이 델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 헨리는 48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10년 동안에 300 편에 가까운 단편소설을 남겼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카우보이, 점원, 공장의 직공 등을 전전하였다. 그러다가 일하던 은행의 돈을 횡령하여 3년3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이후 뉴욕으로 가서 본격적인 작가가 되었고, 감옥에서의 체험은 그의 문학 세계를 일군 원천이 되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평범한 미국인의 소박한 생활을 그린 단편 소설이었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의 상상을 뒤엎는 마무리는 그의 문학작품들의 특징이다. 19세기 말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분출하던 시기이지만, 델라와 짐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유머와 애수를 지닌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소시민들이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의 값어치는 금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진 사랑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좌. 짐 캐리가 7개의 캐릭터를 맡아 연기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캐롤, 2009, 우. 스크루지 중, 영국, 2000년, 13cm)
가장 멋진 반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문학 작품은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럴(1842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스크루지’로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디킨스는 이 소설에서 크리스마스 밤을 지나는 한 사람의 처절한 반성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에베네저 스크루지(Scrooge)는 '구두쇠(Screw)'와 '사기꾼(Gouge)'를 섞어 작명한 것 같은 심술궂은 이름이다. 영국 포츠머스에서 하급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디킨스는 12세 때에 런던의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였을 정도로 어렵게 성장하였다. 그는 어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리버 트위스트’나 이 소설처럼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을 잘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크라칫의 집과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마을의 집 종, 에네스코 사. 1980년대, 미국)
5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첫 장은 스크루지의 동료였던 제콥 말리가 사망한 7년 뒤인 춥고 음습한 런던의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된다. 나이든 수전노 스크루를 묘사한 문장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완벽하게 상상하게 해 준다.
“맷돌을 꽉 움켜진 것 같은 단단한 손, 찌그러지고 비뚤어진데다 욕심으로 가득 찬 상처투성이인 사람, 그리고 욕망을 꽉 움켜지고 있는 죄인 같은 모습의 사람. 어떤 강력한 돌이라 해도 온화한 불꽃을 튀길 수가 없을 만큼 단단한 부싯돌 같은 사람, 비밀스럽고, 자기 자신에만 함몰되어있으며 굴 껍질 속에 소외된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의 냉혹함은 얼굴 표정을 얼어붙게 하였고 오직 코만 바깥으로 끄집어낸 듯하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의 눈을 충혈되고 입술은 푸르며 뺨은 쪼글쪼글해졌고, 걷는 모습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항상 으르렁거리는 쇠소리에 빠른 속도로 소리를 질렀다.”
스크루지는 돈만 밝히는 구두쇠였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석탄을 떼지 않는 사무실에서 지냈고, 직원 밥 크래칫에게 냉혹하게 대하였다. 조카가 찾아와서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함께 저녁을 보내자고 요청하지만, 돈이 생기지 않는 쓸모없는 일이라며 차갑게 거절한다. 기부를 권하는 단체의 사람들에게는 감옥과 빈민구제법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자신이 별도로 기부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크루지는 스스로를 사람들과 격리시키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파티를 열고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거나,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인생을 낭비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도 사기꾼들이 꾸며낸 일이라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홀로 보내는 스크루지에게 오래 전에 사망한 동료였던 말리가 사슬을 칭칭 감은 유령이 되어 찾아온다. “이 사슬들은 내가 사는 동안 만들어진 쇠사슬이네. 그런데 자네의 쇠사슬은 내 것보다 훨씬 길고 무거워. 하지만 아직 기회가 남아있네. 자네에게 세 명의 유령이 찾아올 테니 그들을 피하지 말게”라고 말하고 떠난다. 세 명의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과거의 스크루지는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족과 불화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늘 외톨이였고, 사랑을 주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돈만 밝히더니, 마침내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돈 때문에 떠나보낸다. 그는 지나간 어린 시절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스크루지를 찾아온 밥 말리의 유령, 소설의 삽화)
현재의 유령은 직원인 밥 크래칫의 가정을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고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가족이다. 심한 장애가 있는 어린 아들 팀의 모습은 스크루지에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미래의 유령은 어느 무덤으로 스크루지를 데리고 간다. 12월 25일 한 남자가 죽었으나,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은 자의 이름이 스크루지였다. 유령들이 모두 떠나간 후 덩그러니 혼자 남은 스크루지는 경악하였고, 그의 일생이 이렇게 초라할 것임을 알고는 그 동안의 삶을 참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데 몹시 감사한다. 그리고 하루를 살더라도 선행을 베풀고 살기로 결심한다.
크리스마스 날이 밝자, 연락을 끊고 지내던 죽은 여동생의 아들 프레드(조카)의 파티에 커다란 칠면조를 배달시킨다. 심부름을 한 아이에게도 푸짐한 용돈을 준다. 출근길에는 아이처럼 마차의 뒤를 잡고 미끄럼을 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자선기관에다 돈을 기부하고는, 거리에서 캐롤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보탠다. 아침에 지각한 직원 밥에게는 엄포를 놓는다. 밥은 바짝 긴장한다. "이런 자네를 그냥 둘 수는 없네. 자네의 급료를 인상하겠네."
아래의 도자기 인형들은 영국 홀 마크회사에서 1990~93년까지 1개씩 소개한 크리스마스 장식품 종이다. 디킨슨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4명의 남녀(아쉬본씨, 보몬트부인, 채드윅경, 다픈 여사)들이다. 스크루지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캐롤을 따라 부르는 따뜻한 모습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사람’ 도자기 종, 높이 각각 11.5cm ("Mr. Ashbourne" ‘90 "Mrs. Beaumont" ’91 "Lord Chadwick" ‘92, Lady Daphne 1993)
세상은 각박해지고 있고, 모두는 소외받고 가난한 이웃에게 더욱 무관심해지고 있다.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두 문학가가 그 당시의 세상에 전해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같은 감동을 준다. 문득 “델라”와 “스크루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진 천사라는 생각이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