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버무리기’도 거짓말의 일종이다
거짓말을 해야만 다른 사람을 속이고 기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다. ‘얼버무리기’ 혹은 ‘뭉뚱그리기’ 전략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본인을 진실한 사람으로 포장해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단 최신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두 가지 유형의 속임수에 주목했다. 한 가지는 허위진술을 통한 적극적인 속임수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의 속임수다.
그런데 이번 연구팀은 또 다른 한 가지 유형의 속임수가 있다고 말했다. 허위진술을 하거나 정보를 누락하는 방법 외에 말을 얼버무리는 방식이 또 하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을 속여 넘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같은 말하기 방식은 정치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화법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을 해야 할 때 이를 명확하게 답하기보다 흐지부지 대충 얼버무린다는 것이다. 가령 ‘네’,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내용을 여러 부연설명을 더해 모호하게 뭉뚱그린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고급협상과정에 등록한 기업체 간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0% 이상이 협상을 할 때 얼버무리는 방식의 태도로 상대방을 기만한 전적이 있었다.
또 1750여 명의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속일 때 직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뭉뚱그려 말하길 선호한단 사실도 발견됐다. 이 같은 말하기 방식은 실제 속내가 드러나기 전까진 도덕적인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말하기 방식도 기만이고 속임수였단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허위진술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실험참가자들은 자신의 협상 파트너가 과거 말을 얼버무리는 방식으로 속임수를 썼단 사실을 알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협상을 진행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말을 뭉뚱그려 대충 얼버무린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같은 말하기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있단 점에서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화법이었다는 사실이 들통 나는 순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단 점에서 바람직한 말하기 방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성격과 사회심리학저널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