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나르시시즘, 자신감 부족 때문
올해는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이슈가 뜨거웠던 만큼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표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 한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와중에도 소수 그룹은 그에 반하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른 집단의 비판에 굴하지 않고 이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옳고 우월하단 입장을 내세우는 행동을 ‘집단 자아도취증’이라 한다. 집단적으로 나르시시즘이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집단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룹은 그들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같은 믿음은 표면적인 선에 머무른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와 반대되는 속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측정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그룹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단어를 재빨리 답하도록 하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단 자아도취증에 빠진 사람은 사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단 증거를 발견했다.
유럽성격저널(European Journal of Personality)에 이번 논문에 따르면 집단 자아도취증은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집단 사이의 충돌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정치인과 저널리스트의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연구팀은 터키, 포르투갈, 폴란드 등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내가 속한 그룹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거나 “만약 내가 속한 그룹이 세상을 주도한다면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됐을 것이다”와 같은 문장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집단 나르시시즘 기질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모멸감이나 편견을 불쾌하게 느끼고 상대 집단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냈다. 가령 터키 실험참가자들에게는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에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자 집단 자아도취증이 강한 사람일수록 국가적 수모를 당했다는 생각을 크게 느꼈고, 유럽연합에 속한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 위기를 타당한 결과로 평가했다. 포르투갈과 폴란드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집단 자아도취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모욕감을 참지 못했고, 위협적인 존재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상대방에 대한 응징을 희망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집단 나르시시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연구팀이 각 개인의 자존감을 측정한 결과, 이와 연관성을 보였다. 자존감이나 자부심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이에 대한 보상 행동으로 집단 자아도취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즉 자존감이 결핍된 사람은 집단 내 응집력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그룹이 특별하고 위대하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집단 자아도취증도 개인의 자아도취증과 마찬가지로 뿌리 깊이 박혀있는 불안감과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피상적인 자신감에 불과하단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