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소아마비 소녀가 어떻게 올림픽금메달을 따냈을까
미국의 글렌 커닝엄(1909~1988)은 일곱 살 때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커닝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의사는 ‘그렇게 되면 평생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닝엄은 어느 날 스스로 몸을 휠체어에서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아기처럼 배밀이로 조금씩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기면서 두 다리로 서는 연습을 했다. 결국 그는 땅 위에 우뚝 두 다리를 세울 수 있었다. 가족들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적’이라며 기뻐했다.
커닝엄은 곧 바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뚜벅뚜벅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걸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달리기 연습에 들어갔다. 처음엔 걷기나 달리기나 똑같았다. 자신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남들이 보기엔 걷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커닝엄은 13세 때 육상선수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야구 미식축구 복싱 레슬링 등 못하는 게 없었다. 1934년 커닝엄은 남자 육상 1500m에서 세계신기록(4분6.7초)을 세웠다. 곧 이어 1936년 베를린올림픽 1500m에선 3분48.4초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의 흑인여성 윌마 루돌프(1940∼1994)는 2kg의 미숙아로 태어나 네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왼쪽다리가 안쪽으로 굽은 채 마비 돼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얼마 후엔 성홍열과 양쪽 폐렴까지 겹쳤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집안에 늘 혼자 남겨져 누워있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병신’이라고 놀렸다. 그는 여성에다가 흑인이었다. 게다가 그가 사는 지방은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였다.
윌마 루돌프는 피나는 걷기연습으로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지팡이 없이 걸었다. 열두 살 땐 그 지긋지긋한 지팡이를 던져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와 육상선수로 펄펄 날기 시작했다. 결국 열여섯 살인 1956년 호주 맬버른올림픽 미국대표팀에 뽑혀 여자400m 릴레이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4년 뒤 1960년 로마올림픽땐 100m에서 11.0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또 200m(24.0초),400m 릴레이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겨우 스무 살 때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첫 미국여성이 됐다.
윌마 루돌프는 1960년 AP통신 선정 ‘올해의 여자운동선수’, 1961,1962년 미국최고아마추어선수상, 1962년 미국 최고여자운동선수로 ‘베이브 디드릭슨 상’을 받았으며 1963년 미국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루돌프는 어릴 때 소아마비로 걸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고, 병신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더구나 흑인이었고, 여자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는 말한다.
“난 단 한번도 그 외롭고 처참했던 어린 시절을 잊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난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난 달릴 때면 언제나 한 마리 자유로운 나비가 된다”
인간의 생각은 늘 근육에 저장된다. 근육은 하드디스크나 마찬가지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 근육은 움츠러든다. 자꾸 ‘난 못해’라고 겁먹으면, 흐물흐물해진다. ‘바로 이게 내 한계야’라고 주저앉으면 근육도 금세 늘어져버린다. 근육은 꿈을 먹고 산다. ‘난 할 수 있어’라고 맘먹으면 팽팽해진다. ‘그 까짓것 왜 못해’라고 생각하면 우뚝우뚝 일어선다.
근육은 기억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근육에 기억을 새기는 것은 피눈물 나는 노력이 뒤따른다. 근육은 수천수만 번 되풀이해서 가르쳐줘야 비로소 기억한다. 운동기술을 처음 익힐 때는 왼쪽 뇌가 작용한다. 왼쪽 뇌는 동작을 이해하고 분석한 뒤 근육에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저장한다. 물론 그러기위해선 피나는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이때 기본기를 잘못 배우면 큰일 난다. 나중에 고치려면 몇 배나 더 힘들다. 아니 거의 고치기가 불가능하다. 더디 가더라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근육은 한번 기억하면 평생 잊지 않는다.
그렇다. 몸은 알고 있다. 생각을 멈추면 몸이 알아서 한다. 최고스타들은 ‘아무 생각 없이도 플레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운동기술을 몸에 익힌다. 그들은 ‘무의식 본능’으로 플레이를 펼친다. 오른쪽 뇌를 쓴다. 오른쪽 뇌는 근육에 기억된 기술을 직감적으로 자연스럽게 펼친다. 그 순간 몸짓은 정말 아름답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무의식 본능에서 이뤄진다.
'축구황제' 펠레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본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의식 본능으로 공을 찼다. 본능이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발휘됐다. 한마디로 무의식 본능(무아지경, 완전몰입, 집중)은 더 이상 의식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중력은 무시무시하다. 우즈는 “내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모를 것이다. 난 그 정도로 집중한다”고 말한다.
스포츠과학자 로버트 올스턴은 “뛰어난 기량은 무의식중에 또 다른 정신이 자신을 지배하고,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어떠한 의식적인 명령도 요구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고 스타들은 경기를 하기도 전에 이미 경기를 한 듯한 느낌으로 나온다.”고 단언한다.
스타들은 본능적으로 멘탈 리허설(mental rehearsal)을 끝내고 경기를 시작한다. 멘탈 리허설이란 ‘예상되는 현실 장면을 미리 이미지로 그려보고 마음속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과도 비슷하지만 멘탈 리허설은 이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세계 최고스포츠스타들의 성격은 대부분 비슷하다. 일단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자신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 ‘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글렌 커닝엄이나 윌마 루돌프는 남들이 ‘병신’이라고 놀렸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계최고의 육상 선수가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어떻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가?
그것은 정신근육이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몸의 한계란 없다. 거꾸로 ‘이게 내 한계야’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그 선수 생명은 끝이 난다. 모든 제약은 자신의 마음과 가슴에서 나온다. 몸은 그 마음과 가슴의 아들일 뿐이다. 결국 스포츠스타들의 최대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타들은 기술을 배울 때도 독특하다. 감독이 가르쳐 준다고 다소곳이 배우지 않는다. 베이비 루스는 피칭연습을 하라고 하면 배팅연습을 했고, 1루 수비 연습할 땐 외야까지 달려 나가 공을 잡았다. 한마디로 반항아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넘치는 창조성과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험도 즐긴다. 그러다 크게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패를 통해 금세 훌쩍 한 단계 뛰어오른다. 그만큼 경기를 즐긴다. 주눅 들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자신감, 뜨거운 열정, 강한 승부욕, 무서운 집중력….
생리학자들은 1954년 5월6일 이전까진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면 심장이 터져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은 “그건 넘을 수 없는 인간의 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의 옥스퍼드 의과대학생 로저 배니스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그 4분벽을 깨버렸다. 그리고 그 후 수많은 선수들이 잇따라 4분벽을 넘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관념의 벽’이었던 것이다. 배니스터는 말한다.
“인간의 몸은 생리학자들보다 수백 년은 앞서있다. 생리학이 비록 호흡기와 심혈관계의 육체적 한계를 알려 줄지는 모르지만, 생리학지식 밖의 정신적 요인들이 승리냐 패배냐의 경계사선을 결정한다. 그 정신력이 운동선수가 얼마나 절대한계까지 갈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