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마닐마닐 인절미 맛 ‘임자도 민어아리랑’

[김화성 칼럼] 마닐마닐 인절미 맛 ‘임자도 민어아리랑’

[이미지 출처 : Yellow Croaker Fish/Shutterstock.com]

묵은 지에 훌훌 싸서, “한 점 먹세 그려! 또 한 점...”

장맛비에 자귀나무꽃이 요염하다. 실쭉샐쭉 눈썹달이다. 발그레 피어오른 몽실몽실 꽃구름. 간질간질 깃털부챗살. 건듯 바람에 공작의 날갯짓으로 가늘게 떤다. 연분홍 목화솜털 꽃숭어리가 비에 젖는다. 담장너머 능소화가 하늘거린다. 넘실넘실 할금할금 웃는다. 임금님 발자국소리 들으려고, 까치발로 서성이다 죽은 궁녀의 넋. 주황꽃잎이 화사하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민어의 ‘복사꽃살점’이 농익고 있다. 민어는 맛있다. 물컹! 씹히는 살점에 자지러진다. 물큰한 살점이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뭉근하게 으스러지면, 에라, 한 세상 겯거니틀거니 아옹다옹할 게 뭔가. 한 생이 삼베홑청처럼 가볍구나.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 못 오나니!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한여름 민어 떼는 왜 울까. “우웅~우웅~” 왜 바다 밑에서 소 울음소리를 낼까. “꽈악~과악~” 개구리 쉰 울음소리를 토해낼까. 사람들은 바다 속에 긴 대롱을 꽂는다. 그리고 바다진흙바닥에서 울리는 민어 떼의 달뜬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민어 울음소리는 쉽게 대롱 속에 모아진다. 곧 민어 떼가 우는 곳이 가늠되고, 그곳에 그물이 던져진다.

한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서정춘의 ‘종소리’ 전문>

민어는 부레로 소리를 낸다. 민어부레는 커다란 소리울림통이다. 근육질의 뱃속 공기주머니이다. 민어는 부레를 힘껏 부풀려 뭉툭한 소리를 만든다. 생김새가 소의 등골이나 지라 비슷하다. 부레는 맛있다. 소금장에 찍어먹으면 쫀득하고 쫄깃하다. 씹을수록 새록새록 맛이 고소하게 우러난다. 찜으로 먹어도 쩍쩍 입에 달라붙는다. 부레 속에 소를 채워 찜을 한 어교순대도 황홀하다. 오이 두부 쇠고기 따위를 소로 박는다.

부레는 잘게 썰어 볶으면 진주 같은 구슬이 된다. 바로 아교구(阿膠球)가 그것이다. 아교구는 보약 재료로 쓴다. 부레는 말렸다가 풀을 만들면 초강력 접착제가 된다. 천년 간다는 부레풀(魚膠·어교)이다. 전통 활이나 나전칠기 자개장 만들 때 필수 천연접착제다. 놀부가 그렇게 탐을 냈던 화초장도 틀림없이 민어 부레풀을 썼을 것이다.

TV드라마 ‘식객’에서 최고의 숙수를 뽑는 첫 번째 시험문제가 바로 ‘민어부레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숙수는 민어부레회덮밥(쫄깃하고 감칠맛)을 내놓았고, 두 번째 숙수는 민어부레석류탕(깊고 단맛)을 선보였다. 하지만 으뜸상은 성게알과 함초로 부레 속을 채운 민어부레성게알함초 요리가 차지했다. 한마디로 ‘입안에 바다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민어는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10㎏이 넘는 수컷을 최고로 친다. 암치는 알을 낳아서 살점이 부석부석하다. 경매가도 한참 떨어진다. 남도에선 민어 큰 것을 ‘개우치’라고 부른다. 민어는 보통 12~13년 정도 산다.

민어는 흰 살 생선이다. 흰 살에 연분홍 복사꽃 빛이 스리슬쩍 사르르 감돈다. 산란기인 6~8월이 안성맞춤이다. 흰 살 생선은 대부분 깊은 바다에서 산다. 굼뜨다. 조기 광어 대구 명태 가자미 우럭 도미 병어 갈치들이다. 맛이 진하지 않고, 살이 연하다. 씹는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물컹한 것이 두고두고 남는다.

붉은 살 생선은 보통 등이 푸르다. 그래야 눈 밝은 새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는다. 얕은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바다색깔과 비슷해야 유리하다. 동작도 ‘빠릿빠릿’하고 잽싸다. 고등어 정어리 멸치 참치 꽁치 삼치 연어가 그렇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핏대들이다. 성질이 불같다. 뭍에 나오면 금세 펄펄뛰다가, 죽어버린다. 상하기 쉬워 빨리 먹어야 한다. 맛이 진하고 비린내가 강하다. 기름기가 많아 느끼하지만, 고소하다.

[이미지 출처 : Yellow Croaker Fish/Shutterstock.com]

회는 흰 살 생선회부터 먹는 게 기본이다. 붉은 살 생선회부터 먹으면 ‘느끼한 맛이 오래 남아있어’ 다른 생선회 맛은 느끼기 어렵다. 민어는 어린이 노인 환자 여자들에게 좋은 음식이다. 소화흡수가 잘돼 허약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입맛을 나게 하고 이뇨작용을 돕는다.

민어탕은 임금님 수랏상 단골음식이었다. 조선시대 삼복 복달임으로 첫째 민어탕, 둘째 도미탕, 셋째 보신탕을 쳤다. 복날이 오면 양반은 민어탕을, 상놈은 시냇가에 모여 보신탕을 즐겼다. 민어탕은 단물 쩍쩍 오른 애호박, 아삭아삭 상큼한 미나리에 쑥갓 팽이버섯 뭉텅뭉텅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다. 참기름 등 강한 양념을 넣으면 고유 맛이 사라진다. 맛이 깊고 담백하다. 뜨거울 때 먹어야 노란 기름이 굳지 않아 시원한 느낌이 든다. 모락모락 김 자르르, 노란 기름 두둥둥! 염천고열에 그 깊고 시원한 맛, 장독대 새우수염 족두리꽃이 허허허 너털웃음 웃는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민어는 예부터 상류층이 즐긴 고급요리다. 그런데 왜 백성 ‘민(民)’자를 붙여서 민어(民魚)라고 했을까? 원래 민어와 조기는 사촌쯤 되는 친척이다. 큰 것이 민어이고, 작은 것이 조기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조기를 석수어(石首魚) 혹은 면어(?魚)라고 불렀다. 이 중 ‘?(면)’의 중국발음이 ‘民(민)’과 비슷하다. 이에 조선선비들은 이 고기를 ‘민어(民魚)’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민어는 백성들과는 거리가 먼 생선이다. 민어는 어부들이 잡았지만 그걸 주로 먹는 사람들은 신분 높은 한양 대갓집 양반들이었다. 이름은 ‘백성물고기’ ‘국민물고기’인데 실제는 ‘양반생선’인 것이다. 그것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짜 내는 것은 평민들이지만, 막상 비단 옷을 입는 것은 귀족들인 것과 마찬가지다.

어제 성안에 갔다가

손수건에 눈물 흥건히 적시고 돌아왔네

온몸에 비단을 감은 사람들은

누에를 친 사람들은 아니었네

(昨日到城廓 歸來淚滿巾 遍身綺羅者 不是養蠶人)

-<작자미상 중국한시>

[이미지 출처 : Maeuntang/Shutterstock.com]

민어회 민어탕 민어회무침 민어구이 민어전 민어아가미무침 민어뼈다짐…. 민어는 못 먹는 게 없다. 비늘과 쓸개를 빼고는 다 먹는다. 육지의 소(牛)나 마찬가지다.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자그마치 20여 곳이나 된다. 펄펄뛰는 활어보다는 어느 정도 숙성된 선어(鮮魚·냉장된 것)가 맛있다. 단연 수컷 뱃구레(뱃살)를 최고로 친다. 기름기가 있어 쫄깃하고 구수하다. 회는 된장에 찍어먹거나 묵은 지에 싸서 먹는다. 민어껍질은 전을 부치거나 살짝 데쳐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다. 데친 껍질에 밥을 싸서 먹어도 기가 막히다. 지느러미도 엇구뜰하다. 지느러미뼈와 가장자리 살은 뼈다짐으로 먹는다.

민어 알은 어란으로 으뜸이다. ‘봄 숭어알, 여름 민어 알’이다. 참기름을 몇 번이고 발라가며 그늘에서 말린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다.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민어 뱃살 안쪽 좌우에 붙어있는 가슴살 ‘갯무레기’는 단단하면서도 맛이 깊다. 쫄깃하고, 사각거린다. 찰지고 감치는 맛이 있다. 회로는 수컷민어 가슴살 갯무레기와 뱃살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민어 어만두도 일품이다. 민어 살을 저민 조각에 소를 넣어 반달모양으로 만든 뒤 그것에 녹말을 씌워 찌면 된다. 어채는 납작하게 저민 민어 살을 오이 홍고추 표고버섯 등과 함께 녹말가루에 굴린 후 끓는 물에 데친다. 한마디로 생선을 데쳐서 온갖 채소와 어울려 먹는 음식이다. 민어 말린 것을 얇게 저며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먹어도 맛이 황홀하다. 인천지방에선 민어대가리 등뼈 내장을 넣어 끓인 서덜탕(일명 서덜이탕)이 일품이다. 아가미와 내장으로 담근 민어젓갈도 있다. 쌀 뜬 물에 마늘만 넣고 푹 고아내면 민어곰탕이 된다.

민어는 전남신안 임자도, 지도 그리고 영광낙월도 부근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 중국산이나 양식민어는 더 말해서 뭐하랴. 요즘 흔한 중국산 점성어(홍민어)는 값은 싸지만 맛이 별로다. 옛날 임자도 사람들은 ‘한여름 민어 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지만 요즘은 점점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자연산민어는 귀하고 비싸다. 도대체 그 많던 민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신안앞바다에서 잡히는 민어는 신안지도읍 송도어판장으로 모인다. 매일 아침 경매가 이루어진다. 30여 년째 그곳에서 민어 도소매업을 하고 있는 지도횟집의 정화자 사장(남편은 어선선장)은 말한다.

“갓 잡은 수족관의 민어가 ‘꿔억~ 꾸욱~’ 개구리 울음소리를 낸다. 이제 슬슬 민어가 잡히기 시작한다. 민어떼가 알을 낳으러 임자도 앞바다에 몰려오고 있다. 7월말~8월 중순이 피크다. 보통 수컷(10㎏이상 대짜)이 암치보다 2배 넘게 비싸다. 솔보굿 민어껍데기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얼음물에 담갔다 꺼내면 꼬들꼬들해진다. 그걸 썰어 참기름소금장에 찍어먹으면 둘이 먹다가 셋이 꼴까닥해도 모른다. 민어 물렁뼈도 칼로 다져서 썰어먹으면 부귀영화 억만장자 눈곱만치도 안 부럽다.”

[이미지 출처 : Yellow Croaker Fish/Shutterstock.com]

민어회는 두께두께 어슷하고 큼직하게 썰어야 제 맛이 난다. 잇몸에 닿는 뭉툭한 촉감이 좋다. 윗니 아랫니 사이에 뭉툭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저릿하다. 달짝지근하고 살살 녹는다. 목포 영란횟집은 ‘식칼(?)로 뭉텅뭉텅 썰어주는’ 인심으로 전국 식도락가들에게 이름났다. 그만큼 아직도 소박하다. 막걸리식초로 만든 초장 맛도 일품. ‘영란’은 여주인이름을 딴 것이다. 목포 중앙동 삼화횟집도 이름난 곳이다.

서울 서초동 국제전자센터건너편 삼학도는 30년 넘게 민어전문집이다. 서울 논현동 리츠칼튼호텔 건너편 먹자골목에 있는 노들강도 장안의 소문난 집이다. 서울강북에선 삼청동 총리공관 옆 ‘병우네’가 으뜸이다. 모두 신안민어만 고집한다.

집에서 멀리 나가 혼자 어둑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밤 등대처럼 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곧장 목포 유달산 밑으로 가서 영란횟집 계산대 앞에 민어 한 마리로 누워 있겠다 벗겨 손질한 껍질 옆에다 소금 종지를 두고 내장을 냄비에 끓여 미나리도 반드시 몇 가닥 얹겠다

혹여 전화하지 마라 올 테면 연분홍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 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 둘 것이니

때로 살다가 저며 내고 발라내야 할 것들 때문에 뼈는 아리지 그래도 오로지 뼈만이 폭풍 속에 화석을 새겨 넣지

그러므로 당신은 울지 마라 소주병처럼 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바닷가 언덕에 서서 호이호이 울어라

-<안도현 ‘민어회’ 전문>

왜 하필 민어인가? 왜 민어에만 칼을 대는가? 민어라고 어디 뼈가 아리지 않겠는가? 민어는 맛있다. 맛있는 게 죄이자 업보다. 물컹! 씹히는 살이 부드럽다.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뭉툭하고 지긋이 닿는 느낌이 좋다.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한 세상 살다보면, ‘저며 내고 발라내야’ 할 일들이 좀 많은가? ‘연분홍복사꽃 살점 떼어낼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럴 땐 어둠 컴컴한 동굴에 처박혀, 제 상처를 핥으며 꺼이꺼이 울고 싶다. 아니다. 아예 땅바닥에 넉장거리로 드러누워 하늘을 우러러 보고 싶다. 가쁜 숨을 가지런히 하고, 다소곳이 서해소금밭 옆에 뼈로 남으리라.
“푸하하, 자, 이제 나를 회 뜨든, 매운탕 끓이든, 맘대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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