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시대... "망막이 위험하다"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 늘어나면 덩달아 증가하는 병이 있다. 바로 망막질환이다. 만성질환이 망막혈관에 순환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몸이 천냥이라면 눈이 구백냥’이라는 속담처럼 망막질환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급증세를 보이면서 망막질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관련 치료제 시장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비즈니스 정보서비스 및 컨설팅업체 비전게인에 따르면 전 세계 안과질환 치료제 시장은 지난 2012년 19조원에서 오는 2021년 32조원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시장 평가서인 마켓스코프는 이 중 망막질환 치료제 시장이 같은 기간 8조원에서 19조원으로 연평균 1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망막은 빛에 대한 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꿔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신경조직이다. 망막질환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노인성 질환인 황반변성과 당뇨병성 망막병증, 망막혈관질환, 망막박리가 대표적이다. 국내 성인의 실명 원인 1위는 당뇨병성 망막병증이며, 65세 이상 노인에서는 황반변성이 주된 실명 원인이다.
▲4대 망막질환 = 황반변성은 망막 중심부인 황반에 변화가 진행돼 생기는 병이다. 유전적 요인이나 심혈관계질환, 고콜레스테롤혈증, 흡연 등 다양한 원인으로 손상된 황반에 노폐물 결정체인 ‘드루젠’이 쌓이면서 영양공급이 차단된 시세포가 사멸해 실명에 이르게 된다.
당뇨병으로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망막혈관이 약화되면 우리 몸은 신생혈관을 만들고 다양한 물질을 분비하게 된다. 이때 혈관이 쉽게 파열돼 출혈이 생기거나, 분비물질이 쌓여 망막 부종을 일으키는 망막병증으로 이어진다. 30년 이상 당뇨병을 앓은 환자의 90% 이상에서 나타나며, 초기인 비증식성 망막병증 환자가 증식성 환자보다 5배 이상 많다. 초기에는 노안으로 오인할 수 있어 날파리가 떠다니는 것 같거나, 사물이 왜곡돼 보이면 검사가 요구된다.
망막혈관질환은 눈에 생기는 중풍이다. 망막에 분포한 동맥과 정맥이 막히거나 염증이 생겨 시력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망막박리는 안쪽 망막이 찢어지거나, 당뇨병성 망막병증, 염증 등으로 신경상피가 바깥쪽 망막색소상피로부터 분리돼 생긴다.
▲망막질환 치료법 = 이렇게 종류가 다양한 망막질환은 환자 상태에 따라 같은 질환이라도 치료가 달라질 수 있다. 일차적으로 수술요법이 가장 먼저 고려된다. 다만, 당뇨병성 망막병증의 경우 일차적으로 수술보다 레이저요법과 약물치료, 항체의약품 안구주사 등을 시행한 뒤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망막박리 등이 동반되면 수술을 시행한다.
수술 다음으로 많이 시행되는 레이저요법은 레이저로 망막의 허혈부분이나 망막 주변부를 태우는 치료법이다. 망막의 산소량을 감소시키고, 신생혈관을 만드는 물질을 억제할 수 있어 실명의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지만, 중증질환으로 진행된 환자에서는 효과가 없어 치료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비증식성 당뇨망막병증의 진행을 막기 위한 레이저광응고술과 망막박리 예방에 주로 사용되는 레이저장벽술이 있다.
최근에는 혁신적인 약물이 개발돼 기존 수술과 레이저요법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안구나 안구 주변에 주사하는 이 약물들은 습성 황반변성의 일차 치료제로 처방된다. 황반변성은 시각손상을 일으키는 신생혈관 동반유무에 따라 건성과 습성으로 나뉜다. 신생혈관이 동반되지 않는 건성이 90%를 차지하지만, 아직 건성 치료제는 없는 실정이다.
▲혁신적인 치료법 = 허가된 약물로는 루센티스, 아일리아, 아바스틴 등이 있다. 이 약물들은 황반변성과 당뇨망막병증, 망막혈관폐쇄 등을 일으키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를 억제하는 항체치료제이다. 안구에 직접 주사해야 한다는 공포감과 주사 부위의 염증 위험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효과 역시 시력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는 정도이다.
루센티스는 지난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망막질환 치료제다. 출시 후 4억달러이던 매출은 연평균 67%씩 성장해 지난해 42억달러를 기록했다. 후발주자인 아일리아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출시 후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돼 지난해 루센티스와 비슷한 4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루센티스와 아일리아의 국내 판권은 각각 노바티스, 바이엘이 보유하고 있다.
로슈가 개발한 항암제인 아바스틴은 황반변성 치료제로 적응증을 얻지 못했지만, 신생혈관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어 오프라벨(허가 외 임상)로 처방되고 있다. 부작용과 합병증에 대한 안전성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조건으로 임의비급여로 처방할 수 있다.
황반변성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성 황반변성에 대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의료기기도 있다. 국내사인 루트로닉이 개발한 황반치료 레이저 ‘알젠’이다. 루트로닉에 따르면 독일에서 건성 황반변성 환자 10명을 상대로 임상을 진행한 뒤 1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7명에서 드루젠 감소가 확인됐다. 알젠은 중심성장액맥락망막병증, 당뇨병성 황반부종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유럽 CE인증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