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치매.우울증 한방치료 시범사업”... 의사.한의사 ‘설전’
서울시가 한의사회와 함께 노인들을 대상으로 치매와 우울증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이에 따른 한의약 건강증진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시범사업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대한치매학회가 사업 추진을 재고해달라며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치매학회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어르신을 위한 치매, 신경퇴행질환, 우울증 예방 등 노인건강사업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지만, 이번 사업의 내용이나 방법에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과 위험성이 있다”며 입장을 밝혔다.
치매학회는 의사와 간호사, 심리학 전공자, 사회사업가, 작업치료사 등 치매와 연관된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학회로, 지난 2007년부터 서울시가 진행해 온 치매사업에 동참해왔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 사업’은 치매와 우울증에 대한 선별검사와 검사결과에 따른 4주 및 8주 한의약 건강증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선별검사 도구로는 간이정신상태검사(MMSE)와 노인우울척도(GDS)가 쓰인다. 올해 시범사업에는 종로구, 용산구, 노원구 등 시내 10개 자치구와 지역 내 한의원 150곳이 참여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선별검사를 통해 인지기능저하 노인과 우울감이 있는 노인에겐 일대일 생활행태 개선교육, 총명탕, 한약과립제 투여 등으로 구성된 8주 프로그램을, 건강한 일반 노인에겐 뇌 건강을 위한 기공체조, 치매예방교육, 회상교실 참여 등 4주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치매학회는 이에 대해 사업 대상자 선정 방식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인질환이 다양한 치매를 MMSE나 GDS 등 단순 선별검사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별검사에서 인지기능저하가 의심돼도 병력과 뇌영상, 정밀신경심리검사 등 추가검사가 이어져야 치매의 원인질환을 진단하고, 치료 및 예방 가능하다는 게 학회 설명이다.
치매학회는 “치료를 전제로 한 치매 진단은 치매환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심리적 충격, 약물오남용 위험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단순 선별검사만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치료가 포함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발상은 치매 전문가라면 추진하기 힘든 위험한 생각으로, 이는 마치 혈액검사에서 간수치가 비정상이면 간암으로 진단해버리고 이에 대한 추가 정밀 검사 없이 암 치료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피력했다.
치매학회에 따르면 지역사회에서 치매검진사업을 진행했을 때 치매MMSE가 비정상인 사람 중 실제 치매로 진단받는 경우는 1/3 이하였다. 치매학회는 “사업의 가장 핵심인 대상자 선정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시민건강을 위한 좋은 취지의 사업 목적이 왜곡될 수 있다”며 “사업결과가 낳을 파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치매학회는 치료 방식의 안전성에 대한 조치도 부족하다고 짚었다. 사업에 치료가 포함되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큰 치료 시도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일부의 이익을 위해 결과가 왜곡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 아래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치매학회는 “이번 사업에 쓰인다고 홍보되고 있는 총명침, 과립 한약 등은 비록 한의학에서 쓰여 온 치료법이라 하더라도 약물의 구체적인 성분과 침술 방식이 명확하게 공지되지 않고 있고, 치료 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런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 사업진행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의계는 학회 등 의료계의 반발을 ‘직역이기주의’라고 잘라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치매치료에 관한 한의학 치료의 우수한 효능은 이미 국내외 유수의 학술논문 등을 통해 검증됐으며, 일본신경학회 가이드라인에도 포함돼 있는 등 의료 선진국에서도 한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양방의료계는 국민 건강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한의학이라고 하면 반대부터 하는 직역이기주의를 버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의협은 “현재 국내 한의과대학과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치매 관련 교육을 충분히 진행하고 있고, 이에 따라 모든 한의사는 치매관리법 제2조 2항에 따라 치매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보장받고 있다”며 “노인장기요양보험 치매 등급 진단 시에도 MMSE 등을 통해 소견서를 발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의협은 또 “지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서양의학 서비스만으로는 국민건강 증진과 개선에 한계를 느끼고, 한의학으로 보완해 국민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며 “그런데 양방의료계가 자신들의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근거 없는 비난과 반대만을 일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