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을 부르는 ‘진상환자’를 대하는 자세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얼마 전 진상환자는 의료진의 오진을 부른다는 연구결과를 접했다. 캐나다 토론토 임상시험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의 공격적인 태도는 의사가 의학적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집중력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 결국 오진 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의료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던가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게 되면 환자 스스로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들의 단호한 충고였다. 이러한 진상환자 비율이 전체의 15%로 적지 않은 비율이어서 의사들의 적극적인 해결의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을 불신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환자들도 의사의 태도에 따라 없던 신뢰도 생겨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은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거칠게 표출하는 경향이 크므로 의료진들 스스로가 최선의 대응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왜 의료진이 감정근육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탄탄히 단련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타당성을 밝힌 듯 하다. 진상환자에 따른 폐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다수의 의료진들이 진료실에서 빡빡한 진료 스케줄로 하루 수 십 명의 다양한 환자를 접하다 보면 상식 이하의 행동에 난감 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때로는 예의를 갖추지 않아서, 때로는 의료진에게 불법적인 요구를 거리낌없이 요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만큼 난동수준의 불만표출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료서비스 업종은 잡음을 꺼려하는 분야이다 보니 어느 업종보다도 진상환자에 대해 말 못할 고민으로 속앓이를 하는 의료진들이 많다.
의사와 환자와의 특수한 거래관계는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함에 있어서 강력한 신뢰관계를 요구한다. 물건을 사고,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환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정보를 노출해야 하고, 의료진의 전문성에 대해 의심의 여지없이 온전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전제된 거래관계에서 의료진은 민감한 내용들을 다루고 전문가의 식견을 따르도록 환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가운데 의사이든 환자이든 부정적인 감정의 개입은 신뢰관계의 균열을 초래한다. 이처럼 의사와 환자 사이에 사소한 언쟁은 신뢰를 지속시키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
진상환자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는 의료진은 난감하기 이를 때 없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불만을 정상적으로 표출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 이상할 만큼 미숙하다. 참을 만큼 참고, 이내 못 참으면 욱하고 지르는 기질이 잠재돼 있다. 정도를 지나쳐 범죄를 짓는 줄도 모르고 정당한 요구인양 큰 소리로 폭언을 쏟아내는 것이 일상화 돼 있다.
이러한 환자들의 행동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때 복잡한 감정을 읽는 의료진의 노력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환자가 진상을 자초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원인에 따라 처방이 다르듯이 진상환자에게도 조금 다른 접근법을 시도 해야 한다.
가벼운 우울상태로 감정표현과 조절이 어려운 환자들은 짧은 시간 내 환자 자신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그러는 가운데 상대 의료진의 불쾌한 감정을 먼저 감지한다고 치면 불안과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다.
이럴 경우는 의료진이 먼저 목소리 톤을 낮추고 말의 속도를 늦춰 어수선한 환자의 상태를 먼저 정리해 준다면 진료시간에 압박감에서 조금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비로소 의료진의 전문가적 태도에 진상환자는 곧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잘난척하는 환자이다. 의료진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환자는 참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다. 3분 진료에 의료진과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환자들이 서운함을 의학정보검색으로 달랬는지, 의료진도 놀랄 만큼의 많은 정보를 들고 오는 환자들도 있다. 의료진을 못 믿어서인지, 환자 자신의 정보력을 맹신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의료진의 불신을 표하는 환자에게는 과거 치료경험을 살짝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전 의료진의 태도나 말에 상처를 받았다거나 잘못된 오진으로 좋지 않은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 수 없는 환자의 반응과 태도라면 더욱 의심해 볼만 하다. 환자의 부정적인 경험에 따른 것이라면 의료진의 적극적인 태도가 불신을 거두어 내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진상환자의 원흉은 극도의 불안감이다. 정서적으로 경직돼 있는 상태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불신이 크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환자 스스로도 답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의료진의 공감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간의 고통과 불안을 포용하는 따스한 면을 의료진이 먼저 보인다면 높디 높은 불신의 벽을 한 순간에 해제할 것이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의료진이긴 하지만 이러한 환자에게는 마음을 나눠주는 것도 전문가의 아량이 아닌가 싶다.
많은 의료진들이 임상에서 진상환자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어쩌면 진상환자는 대하기 어려운 부류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의료진 구미에 맞는 환자만을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까다로운 환자, 진상의 소지가 큰 환자들을 대함에 있어 의료진이 전문가다운 소통방식을 찾아 체득하는 일이야 말로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쌓는 기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