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라고 다르랴... 여인들의 존귀한 누드

이재길의 누드여행(25)

E. J. 벨로크 (1873~1949)

20세기 초, 사회 분위기는 엄격하고 매우 보수적이었다. 억압적 제도와 신분중심 사회에서 개방적인 삶을 추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격식 없는 삶의 모습을 사람들이게 보인다는 것은 당시로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체의 누드를 보고 즐기는 은밀한 ‘유희’는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사진의 등장은 여체에 대한 성적 자극과 호기심이 극대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간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여인의 누드는 사진을 통해 수면 ‘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점차 누드사진은 시각적 유희를 위한 놀이의 도구를 지나, 미적인 본질에 목말라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따스하게 채워주는 감동과 위로의 실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엔 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내의 누드를 사진으로 찍는 사진가들이 있는가 하면, 창부를 대상으로 한 포르노성 사진을 찍어 성적 자극과 상상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매춘부들의 벗은 몸을 찍은 사진은 이윽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인간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카테고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자로 사진가 E. J. 벨로크(E. J. Bellocq)를 손꼽을 수 있다.

창녀라고 다르랴... 여인들의 존귀한 누드

E. J. 벨로크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미국 뉴올리언스를 무대로 활동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그는 누드를 향한 강렬한 욕망을 멈추지 않았다.

여인의 누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특별했다. 적선지대(赤線地帶·홍등가)의 창부들은 ‘예술’과 ‘금기’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이 되어왔다. 포로노성 사진을 연상케 하는 그의 사진들은 어느 순간 인간의 남다른 존재성을 보여준다. 오직 마스크만 쓰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 등장한 여인은 가슴과 음부를 드러내고 있다. 검은 스타킹은 형언하기 힘들 만큼 묘한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사진1, 사진2] 여인의 은밀하면서 에로틱한 자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보여준다.

벨로크의 사진은 직설적이다. 꾸밈이 없다. 그는 모델과의 일정한 거리 속에서 정공법으로 촬영한다.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모델을 향해 플래시(flash)를 터트려 풍만한 가슴과 음부를 드러낸다.

여체의 곱고 아름다운 곡선이나 드라마틱한 육체의 미(美)를 통해 여성성을 강조하는 대신, 그는 누드 자체가 내뿜는 섹슈얼리티를 증명해낸다. 그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언제나 성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사진3] 

벨로크가 의미하는 섹슈얼리티란 여성이 지닌 독보적인 감동의 실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의 미적인 본질을 향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 속 여인들은 환한 빛을 비추듯 존귀함을 드러낸다. 창부의 벗은 몸과 몸은 적어도 벨로크의 사진 속에선 평등한 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인을 바라보는 벨로크의 시선에는 아련함과 동경이 동시에 묻어난다. 금 가고 빛바랜 사진 속 여인에는 다른 어떤 여인과도 같은 여성미가 있다.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창부로 살아가는 그들도 여느 여성과 똑같은 고귀한 매력을 지닌 존재임을 벨라크의 사진은 나타태고 있다.

벨라크의 누드사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세상을 등진 뒤 20년 가까이가 지난 1966년 사진가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에 의해서였다. 그때까지 벨로크는 사진가로서 세상에 그닥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창부를 찍은 그의 사진이 환영받을 리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억압적인 시대의 공기를 뛰어 넘은 그의 누드사진은 세상을 향해 여체의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실체를 외치고 있다.

창녀의 몸도 여전히, 언제나,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것이다!

※ 이재길의 누드여행 이전 시리즈 보기

(24) 환상, 신비... 극단적 왜곡으로 누드 재해석

(23) 살아 움직이는 듯한 누드... 사랑도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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