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 잇단 주총...경영구도 구체화
이 달 들어 주요 제약사들의 주주총회가 잇따르면서 각 기업들의 경영 구도가 구체화되고 있다. 오너 2~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전문경영인을 포함한 이사진의 거취가 정해지는 등 주주와 투자자들에게는 올해의 경영 방향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오너가의 재선임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과 함께 지난해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녹십자는 공동대표인 조순태 부회장이 임기만료로 사임하면서 오너 3세인 허은철 단독 대표 체제로 돌아섰다. 조 부회장의 퇴임은 3세 경영의 안정화에 따른 용퇴로 분석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캐나다 공장 착공, 면역글로불린제제의 FDA 허가신청, 4가 독감백신 허가 등 도약의 기제를 마련했다. 허은철 대표는 “최종 관문을 눈앞에 둔 북미 시장 진입을 위해 총력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JW그룹의 지주사인 JW홀딩스의 이종호 명예회장과 이경하 회장도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이종호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3세 경영인인 이경하 회장은 지주사 회장과 주력사인 JW중외제약의 대표이사 회장을 겸임한다. 지난 해부터 3세 경영 시대를 연 이경하 회장은 그룹 내에서 30년간 영업, 마케팅,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부서에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다. JW그룹은 올해 CI를 통한 JW그룹의 정체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오너 3세인 동아쏘시오홀딩스의 강정석 부회장은 동아ST의 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됐다. 강정석 부회장은 지난 2013년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에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해 사업 조정으로 의약품 사업에서 부문별 전문사업회사 체계를 구축했다. 강정석 부회장에게는 지주사의 안정화가 당면 과제다.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R&D 투자를 전략적으로 수행해 신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한다.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이러한 움직임이 그룹의 더 큰 도약을 이끌 것이란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강하게 형성돼 있다.
대웅제약 창업주인 윤영환 명예회장의 아들인 윤재승 회장도 지주사 대웅과 대웅제약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선임됐다. 지난해 경영권을 장악한 윤재승 회장은 올해 대웅제약이 일부 대형품목의 판권 상실로 매출 감소가 예상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전문경영인의 거취도 주주총회를 통해 가려지고 있다. 대체로 변화보다 안정을 기반으로 인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새로운 인사의 영입과 퇴진도 눈에 띈다. 삼진제약 이성우 대표이사는 6번째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모두 채우면 18년간 재직하는 역대 최장수 CEO가 된다.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이성우 대표이사는 영업통이다. 올해 신약개발과 해외진출을 경영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순환기 질환 의약품 성장, 노인성질환 치료제 영역 확대, 원료의약품 해외 수출 확대, 임상 1상중인 경구용 안구건조증 치료제 신약 개발 등이 삼진제약의 첨병이다.
지난해 수조원대 기술수출 계약으로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한미약품은 이관순 대표이사 사장 체제를 유지했다. 이관순 사장도 3번째 연임이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박사 출신인 이관순 사장은 한미약품 연구소장을 지낸 R&D 전문가다. 한미약품은 탄탄한 신약 후보물질을 구축하면서 주력 품목인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한미탐스’ 등의 두 자릿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관순 사장은 “올해도 R&D 투자와 윤리경영 기반의 영업 혁신으로 국내외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대웅그룹 오너 윤재승 회장 체제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윤재춘 대웅 대표이사 사장도 재선임됐다. 대웅맨인 노갑용 대웅제약 상무이사도 재선임됐다. 업계에서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진을 유지해 안정된 회사 운영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박대창 부사장을 재선임했다. 녹십자와 경영권 분쟁을 일단락한 일동제약은 올해 불안요소들이 해소돼 비전실현에 집중할 여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오는 8월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다. 주력사인 일동제약은 인적분할하고, 나머지 자회사들은 물적분할하기로 결의했다. 기업분할로 일동제약, 일동바이오사이언스, 일동히알테크가 신설되고, 지주사인 일동홀딩스는 자회사의 투자와 관리, 신규사업 육성 등을 맡게 된다.
동국제약 이영욱, 오흥주 공동 대표이사 사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액 2565억원, 영업이익 341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의약품과 헬스케어사업, 해외사업부 등 부문별로 균형 있는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의 성공적인 멕시코 진출 성과를 인정받은 보령제약 최태홍 사장도 연임될 예정이다. 5년전 발매 직후 블록버스터로 등극한 카나브는 중남미, 동남아,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기술 수출됐고, 지난해 멕시코 발매 1년 만에 순환기내과 처방률 1위를 차지했다. 다국적사 마케팅영업 전문가인 최태홍 사장의 영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부광약품 유희원 사장과 박원태 부사장도 재선임됐다. 이병건 녹십자홀딩스 사장, 이동훈 동아쏘이오홀딩스 부사장,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 김진환 JW신약 사장 등도 자리를 지켰다. 박찬일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과 강수현 동아에스티 사장은 새로 선임됐다.
다국적 제약사 출신의 CEO 영입도 눈길을 모은다. 영진약품은 박수준 전 한국산도스 사장, 동화약품은 손지훈 전 박스터코리아 대표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박수준 사장과 손지훈 사장은 1964년생 동갑내기에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법인 CEO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수준 사장은 한국화이자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한국MSD, 베링거인겔하임에서 호흡기사업부, 순환기사업부, 백신사업부 본부장, 전략기획 및 영업총괄 전무를 지냈다. 지난 1월 동화약품으로 영입된 손지훈 사장은 BMS 미국 본사에서 시작해 동아제약 해외사업부 전무를 거쳐 박스터 코리아 대표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