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 보여도... 추상화 조롱할 수 없는 이유
형상을 왜곡하지 않고 실물처럼 생생하게 그려내는 극사실주의 미술품은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감탄하게 만든다. 반면 점, 선, 면, 색채, 질감 등으로 표현한 추상화는 어떨까.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독창적인 표현력에 감탄하며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혹은 “나도 이 정도는 그리겠다”며 조소를 보내지는 않는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조차 화가의 추상적인 그림과 아이들의 낙서를 분별해내는 능력이 있다.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조롱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다는 주장이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예술은 곧 순수한 추상’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쏟고 튀기고 끼얹는 등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스 호프만이나 잭슨 폴락이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다.
그런데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을 보면서 유아나 동물이 마구 그리는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그럴듯한 해석을 붙인 가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인지·발달저널(Journal of Cognition and Development)’에 실린 논문은 이 같은 회의론자들의 의견에 반문하는 관점을 제기했다.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팀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잭슨 폴락처럼 유명한 화가들의 추상화와 아이 혹은 침팬지, 원숭이, 고릴라 등의 동물이 그린 그림을 분별할 수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실험 결과, 4~7세에 해당하는 가장 어린 실험집단조차 아이 혹은 동물의 그림과 전문가의 그림을 분별해내는 능력을 보였다. 단 아이들은 전문가의 그림이 훌륭하다고 평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와 동물이 그린 그림을 더 좋아했고, 심지어 이 그림들이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추상표현주의 화가와 그들의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 만한 결론을 내렸다. 이번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아이들이 어느 쪽 그림을 더 훌륭하게 평가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전문가의 작품과 아이·동물의 낙서를 명백하게 분별해냈다는 점이다.
즉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아이와 비슷한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미취학 아동조차 전문가의 작품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은 낙서와 달리 작가의 그림 속에는 독특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실려 있다는 증거라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