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아기, 누가 더 자기 얼굴 잘 알아볼까? (연구)
아직 말 못할 정도로 어린 아기의 행동은 저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아기의 행동을 곁에서 꾸준히 관찰한 양육자만 몇 가지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기가 하는 행동 중 ‘자기 인식’에 대한 능력은 비교적 확인 방법이 간단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자아인식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벌어진다.
아기가 본인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아기의 이마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인 상태에서 거울을 보도록 하면 된다.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얼굴에 있는 빨간 표시를 인식하고 이를 건드리거나 떼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거울 자아인식 테스트’라고 칭한다. 만2세가 넘는 아이라면 대부분 이 테스트에 통과한다. 그런데 서양 국가 아이들은 이 시기 대부분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일부 비서양 국가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카메룬, 피지, 페루, 인도의 시골지역과 같은 비서양 문화에서 성장한 아기들은 테스트 성공률이 떨어진다.
영국 던디대학교가 최근 ‘발달과학(Developmental Science)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거울 테스트는 문화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연구팀은 잠비아 이켈렌지에 거주하는 생후 15~18개월에 해당하는 아기와 엄마 33쌍, 스코틀랜드 던디에 거주하는 31쌍, 터키 이스탄불에 사는 22쌍을 대상으로 거울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켈렌지는 사람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문화고, 던디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서양 국가의 특징을 보인다. 또 이스탄불은 이 두 가지 문화가 공존한다.
연구팀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을 관찰해 양육방식의 차이를 확인했다. 그 결과, 던디는 대화는 많지만 신체 접촉은 적은 양육방식을 보였고, 이켈렌지는 신체접촉이 많은 육아방식을 선호했다.
실험 과정에서 엄마들은 아기들의 이마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아기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 아기의 47%, 터키 아기의 41%, 잠비아 아기의 15%가 이마의 스티커를 눈치 챘다.
발달심리학자인 장 피아제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자아인식 테스트도 진행됐다. 아기가 매트 위에서 장난감 카트를 밀며 엄마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이 테스트는 아기가 본인이 매트 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거울 테스트가 자신의 얼굴에 일어난 변화를 확인함으로써 정체성을 자각하는 것이라면, 카트 테스트는 자신의 몸이 다른 물체와 별개라는 관점에서 정체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스코틀랜드 아기들은 카트 밀기 성공률이 23%였던 반면, 잠비아와 터키는 각각 50%와 57%의 성공률을 보였다.
즉 양육 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기의 자아인식 능력에 차이가 벌어진다는 의미다. 특히 터키처럼 두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 카트 테스트 성공률이 높았다는 점에서 문화적 공존이 일으키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단 이번 연구결과를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동서양 문화가 혼재된 다양한 지역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