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카 바이러스, 우리에겐 정말 ‘기우’일까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24절기의 하나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한동안 강추위를 몰고 왔던 날씨도 입춘을 의식한 듯 누그러진 모습이다. 예로부터 종이에 입춘을 송축하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다. 보통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이라는 글귀를 적는다.
입춘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최근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곧 따뜻한 봄이 시작되니 우리도 모기 걱정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기우’인 것이다.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의 활동을 미리 차단해야 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지카 바이러스와 뎅기열의 매개체인 흰줄숲모기는 제주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지난 2013년 확인됐다. 국내 흰줄숲모기의 개체 수는 지난해 하루 평균 482.7마리가 채집돼 2013년보다 6.8배 늘어났다. 26종에 이르는 전체 모기 수의 3%에 불과하지만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다.
우리 방역 당국은 “현재는 모기 활동시기에 해당하지 않아 지카 바이러스의 국내 전파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라면서 “해외에서 감염되어 국내 입국 후 발병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름철 모기 활동시기에는 유입환자로부터 국내 전파가 가능하나, 흰줄숲모기의 서식처가 제한되어 있고 개체밀도가 낮아 국내 전파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유럽이 겨울이어서 지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이 적지만, 앞으로 기온이 차츰 오를 경우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WHO가 유럽 국가들을 향해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도록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 이유다. WHO 유럽 담당 국장은 성명을 통해 “유럽에서 모기가 서식할 수 있는 곳을 없애고 유충을 잡도록 살충제 살포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석 신임 질병관리본부장(전 한림대 성심병원장)도 3일 “모기에 대한 특별연구를 진행할 ‘모기팀’을 새로 만들어 지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일본뇌염, 뎅기열 등 모기를 매개체로 감염되는 질병들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이날 취임식 직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지카 바이러스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 같은 질병”이라고 했다. 이는 WHO도 마찬가지다. 지카 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단정적인 발표조차 못하고 ‘의심’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조차 이 미지의 바이러스 정체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4-5년 사이에 국내에서 처음 환자가 생긴 바이러스성 질환이 4가지나 된다. 2012년 West Neil Virus, 2013년 SFTS와 CHIKF, 2015년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 등을 고려하면 바이러스 질환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폭발성 감염병’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대응과정에서 바이러스 전문 과학자의 필요성이 간과되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감염병의 발생 원인과 역학적 특성을 밝히고 방역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예방의학 전문가인 역학자의 몫이 크지만, 감염내과 전문의 위주로 대응했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김영봉 대한바이러스학회 전 학술부장(건국대 교수)은 “바이러스 특성 연구부터 진단, 감시를 위해서는 감염병 전문 과학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감염질환 퇴치를 위해서는 초기단계부터 바이러스 전문가, 역학자 그리고 감염내과 전문의 간의 빈틈없는 공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7월 “메르스 같은 신 변종 바이러스는 또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빠진 채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만 방역 업무에 몰두하면 또 다시 시행착오에 빠질 수 있다. 지카 바이러스 대응은 새롭게 바뀐 우리나라 방역 시스템을 온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민들이 방역 당국을 못미더워해 SNS를 통해 ‘자가 예방’에 매달리는 것은 지난 메르스 사태로 끝을 맺어야 한다. 입춘의 모기 걱정이 정말 ‘기우(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임을 정부가 ’확신‘을 심어주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