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 걱정은 되지만... 아직 ‘관심단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포했지만, 국내에서는 현재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인 ‘관심 단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2일 정진엽 장관 주재로 전문가 위기평가회의를 열어 국내 상황과 대응조치를 긴급 점검하고, 이 같이 발표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해외에서 국내로 환자가 유입된 사례가 없고, 국내 매개모기가 활동하지 않는 시기인 만큼, 경보 수준은 관심 단계를 유지하더라도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의 국내 유입과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조치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WHO의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 선포는 신종플루, 소아마비, 에볼라에 이어 역대 4번째다. WHO는 한국시각으로 지난 1일 오후 9시에 비공개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선포했다. WHO 발표문을 보면 추가조사가 필요하지만,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길랑바레 증후군 등 합병증의 인과관계가 강하게 의심돼 위험지역에서 관련 연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데다 신속진단법이 정립되지 않아 대응하기 쉽지 않고, 신규 발생지역은 면역인구가 없어서 들어오면 대부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며 “엘니뇨로 이집트숲모기가 북상하고 넓어지는 상황이라 개체 수 급증이 예상돼 조기 선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오늘 열린 국내 전문가 위기평가회의에서도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됐다.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 중남미, 동남아 지역과 인적 교류가 잦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오는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연간 4만명, 태국 170만명, 인도네시아 40만명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국내 유입된 감염자가 국내에서 모기에 물려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은 낮게 판단되고 있다. 겨울철이라 모기가 활동하지 않는데다 매개체인 흰줄숲모기의 서식처가 제주도로 제한돼 있고, 개체밀도도 낮기 때문이다. 국내 모기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 역시 없다. 연간 2백명 이상 국내로 유입되는 뎅기열도 아직 국내 모기를 통해 전파된 적 없다.
국내 기후환경에서 겨울이면 모기 성충이 모두 죽기 때문에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이 국내에 토착화할 가능성 역시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따른 매개모기의 변화, 환자 발생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달 29일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을 법정(4군) 감염병으로 지정해 의료기관에 의심환자 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등 신속 감시체계를 가동 중이다. 이와 함께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 의심자는 의료기관에서 혈청을 채취한 뒤 국립보건연구원에서 검사하도록 했다. 혈청에서 RT-PCR로 바이러스 유전자를 검출해 확진하고, 뎅기열과 치쿤구니아열 등에 대한 감별진단도 동시에 진행된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매개 모기에 대한 감시와 남미지역 입항 항공기, 검역구역 내 모기 방제를 강화하고, 입국자 대상 검역과 출국자 대상 예방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방역당국은 일반 국민과 임신부, 의료기관 등 대상별로 세분화된 행동수칙을 안내하는 한편, 내일(3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부처별 조치사항을 점검하는 등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 방역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2개월 이내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국가는 총 27개국이다. 중남미 24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태국과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등이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대만, 도미니카공화국,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등에서도 지난해 이후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의 해외 유입사례가 보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