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 아직 살아있어?” 동료 의사들 깜짝
전립선암 신장암 방광암 등 비뇨기암 환자를 한 해 500여 명 수술하는,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의 김청수 교수(59)는 ‘삼무(三無) 의사’로 통한다.
첫째, 지적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해서 허투로 쉬는 적이 없다. 둘째,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부드럽고 성실히 대해서 적(敵)이 없다. 셋째, 수술 실력도 고수(高手)이지만 환자들과 늘 가슴을 터놓고 대화해서 환자 불만이 거의 없다.
환자에 대한 정성은 유별나다. 수술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병실의 환자들을 둘러보고 퇴근한다. 병원바깥에서 모임이 있어도 병원에 되돌아와서 환자들 목소리를 듣는다. 주말에도 가급적 출근해서 환자 얼굴을 본다. 월요일 오전과 화, 목요일의 외래 진료 때엔 환자의 가정사와 푸념까지 듣다보면 1~2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환자에게 다른 병이 의심되면 다른 과에서 제때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세밀하게 챙긴다.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추가로 외래를 볼 때도 적지 않다.
환자에 유별난 정성... 쉼-적-환자불만 없는 ‘3무 의사’
김 교수는 일찌감치 스포츠의 길을 갈 뻔 했다.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교 축구 대표선수로 상대편 골키퍼를 위협했지만 중학교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는 바람에 축구화를 신발장에 보관해야만 했다. 연합고사에서도 1등을 했고 학력고사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자신이 넉넉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서인지,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 덕분인지, 김 교수는 예과 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평일 밤에는 신상진 현 새누리당 의원(전 대한의사협회장) 등과 함께 서울 성북구 길음동 빈민촌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고, 주말에는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대학생 기독교 의료봉사 동아리’의 회원으로 진료봉사를 했다.
김 교수의 첫 스승은 ‘바보 아니면 성인’이라는 성산 장기려 박사의 차남인 고 장가용 교수였다. 본과 1학년 때 말기 위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를 돌보며 공부하다보니 성적이 바닥권이었다. 장 교수에게 1년 휴학하면서 기초실력을 길러야겠다고 말했더니 깊은 목소리의 대답이 나왔다.
“실패도 안아야...자신 믿고 나아가라” 스승 말 따라 학업 계속
“돌아간다고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실패도 안아야 한다.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
김 교수는 그때 휴학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했더니 2학년 때부터 수업이 재미있어졌고 성적도 뒤따라왔다. 그는 내과와 외과 중 어느 과를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두 요소가 섞여있는 비뇨기과를 평생의 전공으로 삼았다. 이은식(현 서울대병원 교수), 안태영(서울아산병원), 이강현(국립암센터), 유종근(개원), 이상곤(춘천성심병원), 정재영(개원), 안한종(서울아산병원) 등 쟁쟁한 선배들의 존재도 비뇨기과를 선택하는 데 나침판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비뇨기과에서 암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첫 스승이 ‘남성의학의 태두’ 이희영 교수여서 남성의학을 주전공으로 삼아야 했다. 당대 비뇨기과 최고의 칼잡이 김시황 교수에게 전립선비대증의 내시경수술, 방광암의 근치(根治) 수술 등을 배워 수술에서도 자신이 있었지만, 어쨌건 첫째 전공은 남성의학이었다. 김 교수는 군의관 복무 후 갓 개원한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임의로 채용될 때에도 남성의학을 평생 전공할지 않았는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선배인 안태영 교수가 남성의학을 맡으면서 원래 하고 싶었던 암을 맡게 된 것.
암으로 전공 바꾸며 날개 달아...전국서 환자 쇄도
김 교수는 날개를 달았다. 전립선암의 근치적 절제술의 실용화에서 국내 선두 그룹으로 역할했고 방광암 환자의 방광을 정상화시키는 방광확대술, 신방광조형술 등을 보급했다. 미국 듀크대에서 로버트슨, 폴슨, 웹스트 교수등 세계적 대가들에게 전립선암 수술기법을 배우고 귀국, 국내에서 전립선암 수술성공률을 크게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는 혈관외과, 간담췌외과, 흉부외과 등의 의사들과 진행된 신장암 환자를 치료하는 팀을 꾸려 이전에는 치료가 힘들었던 환자를 치유했다. 신장암은 정맥을 통해 심장까지 전이가 되는데 신장과 혈관, 장기의 암 덩어리를 떼 내는 수술법으로 환자들을 살리기 시작하자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왔다.
김 교수는 비뇨기질환을 치유하는 무기가 많다는 게 큰 장점이다. 2010년부터 로봇수술을 시작했고 한 해 300여 명의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한다. 전립선비대증 환자에게 스텐트를 삽입해서 치유하는 치료법도 보급했다. 그는 암 환자의 림프샘을 잘 떼어내 환자 생존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완전 절제할 신장을 부분만 절제해서 평생 투석을 안 해도 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김 교수의 환자들 중 상당수는 다른 병원 의사들이 의뢰한 고위험 환자다.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의사가 나중에 “그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니, 고맙다”고 감탄할 때 은근히 보람을 느낀다.
로봇수술 등 ‘무기’ 풍성...연구에서도 세계적 주목 받아
김 교수는 수술의 기술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의학자다. 2014년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교와 공동으로 남성호르몬제 억제제만으로 전이성 전립선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논문을 의학 분야 최고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바이오벤처 파미셀이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제로 만성신장염, 당뇨병 환자와 전립선암 수술 환자 등의 성기능장애를 치유하는 임상시험, 크리스탈지노믹스가 개발한 새 항암제로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D프린터로 환자의 장기 모형을 똑같이 만들어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는 치료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대한전립선학회 회장을 거쳐 아시아태평양전립선학회 초대 회장을 맡아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의사 회원들을 이끌었다.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으로 서울아산병원의 연구역량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주위에선 김 교수가 축구 선수를 했든, 내과 또는 외과를 맡았든, 남성의학을 맡았든 그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늘 열린 자세로 배우는 것을 즐기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시대 이런 휼륭한 의사 선생님이 있다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