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약 '아스피린', 항암효과 검증 시험대
값싸고 먹기 쉬운 아스피린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해열진통제다. 오늘날에는 아스피린의 또 다른 효능과 부작용을 둘러싼 연구들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어 재차 주목받고 있다. 잘 알려진 심장병과 뇌졸중 예방은 물론, 여러 종류의 암을 억제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와 더불어 장기복용하거나 남용하면 내출혈과 위장출혈, 실명 등의 위험을 높여 득보다 실이 많다는 연구도 있다.
▲英.日, ‘암 억제 효과’ 검증 착수=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과 일본은 아스피린의 암 억제 효과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규모 검증에 들어갔다. 심혈관질환자와 린치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아스피린 연구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전임상과 역학적 증거들이 등장한 데 따른 것이다. 린치증후군은 유전적으로 대장암 등 다양한 장기에 암이 생기는 질환으로, 평생 대장암 발생률이 70% 이상이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최근 이슈 보고 자료를 보면 영국은 정부 산하 영국암연구소를 통해 초기 암을 치료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아스피린 복용이 암 재발 방지와 생존율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런던대학 주도로 영국 전역의 1백여개 의료기관에서 암환자 1만1천명을 상대로 최장 12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대장암, 유방암, 식도암, 전립선암, 위암 환자들로, 아스피린 100mg, 300mg, 위약 중 한 가지를 매일 5년간 복용하게 된다.
영국암연구소의 임상 프로젝트에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도 참여한다. 영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가 미래 암 치료의 판도를 뒤바꾸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의 암 연구 단체인 ‘캔서리서치 UK’는 “저렴하고 복용하기 쉬워 널리 이용되는 아스피린의 암 억제 효과가 검증되면 선진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암 예방에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에 이어 일본도 아스피린의 대장암 예방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가 지원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일본 국립암연구센터와 오사카부립성인병센터 등 전국 20여개 의료기관이 참여한다. 대장암 유발 가능성이 높은 1cm 이상 용종을 절제한 40~69세 성인 7천여명이 대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암의 원인이 되는 만성염증을 아스피린이 막기 때문에 암 예방도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추진됐다. 일본 정부는 임상결과를 토대로 대장암 예방법도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득이냐, 실이냐’ 엎치락뒤치락=아스피린의 암 억제 효과에 대한 연구는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은 전립샘암 판정을 받은 뒤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의 사망 위험이 40% 정도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내놨고, 이 대학과 애리조나대학은 공동연구를 통해 피부암과 증상이 비슷하고 5년 이상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한 환자들은 피부암 위험이 40% 이상 낮았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네덜란드의 라이덴대학은 식도암과 대장암, 직장암 등 위장관암 환자 1만3천여명을 평균 48개월간 추적 조사해 암 진단 후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암 진단 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했거나 전혀 복용하지 않은 환자보다 5년 생존율이 2배 높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유타대학은 건강한 사람에게 60일간 아스피린을 복용하게 했을 때 암 대사물질인 2-하이드록시글루타레이트의 농도가 감소하는 것을 관찰해 암 예방 가능성을 확인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원 저널과 학술지 임상종양학에는 아스피린이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존 연구를 뒤집어 아스피린의 규칙적인 복용이 유방암 발병 확률과 재발 위험을 낮추고, 생존율을 크게 높인다는 논문들이 실렸다.
이와 달리 아스피린의 장기복용과 규칙적인 복용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영구 워릭대학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이 심장병과 암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매일 먹으면 아스피린으로 각종 원인의 사망을 막는 것보다 더 많은 내출혈과 위장출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팀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 신경과학아카데미 메디컬센터와 호주 시드니대학은 아스피린을 매일 장기복용하면 실명 위험을 높이는 등 눈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나란히 내놨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아스피린이 궤양과 천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만큼 암 발병률을 줄이는지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