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악당이 나오는 영화에 빠지는 이유
조커, 한니발, 다스 베이더, 볼드모트와 같은 가상인물은 영웅과 대립되는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독자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기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극악무도하고 끔찍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 매료되는 이유는 뭘까.
인기영화에는 보통 이처럼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비열하고 사악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최근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연구팀이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관객들이 이런 영화에 관심을 갖는 실마리를 찾았다.
악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캐릭터들이 가진 성향과 반대되는 ‘이타주의’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공동 생활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자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타심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고, 그와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은 벌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오늘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보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생각이다.
희생정신이 강하고 사회기여도가 높은 사람은 선하게 평가하고, 본인만 생각하거나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면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경종을 울리게 된다는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회 구성원으로 영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자동적으로 혐오,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영화나 소설 속에 사회 전체를 전염병으로 물들일 수 있는 나쁜 존재가 등장하면 이러한 진화론적 반응이 일어난다.
영웅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는 반면, 악당은 신비주의로 가려진 이유도 악인을 악 그 자체로 평가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악인이 악해질 수밖에 없었던 변명의 여지를 주면 동정심이 들고 극적인 공포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악인을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만 평가해야 우리가 가진 이타성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나 루이스 캐럴의 글처럼 현실세계의 법칙을 위반하고 부조리한 내용을 담은 글을 읽으면 불안해지고, 현실 세계에 대한 일반적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단순히 혐오스럽고 무서운 장르보다 근친상간처럼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더욱 회자되고 관심을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연구팀은 악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회규범을 학습토록 만드는 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악인을 통해 본인의 인간다움과 사회의 정의를 재차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빠져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진화행동과학(Evolutionary Behavioural Sciences)’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