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 30만 재활치료 전국 떠돌이
지난 2006년 10월에 문을 연 보바스어린이병원. 소아재활에 특화해 90병상 규모로 개원했지만, 이 병원은 현재 29병상 규모의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축소됐다. 한 마디로 수지가 안 맞는다. 어린이재활병원은 경증 외래진료에 초점을 둔 지불제도와 저수가로 인해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재활치료에 대한 제도적 근거마저 부족해 치료비 삭감도 적지 않다.
현재 소아병동 1병상 당 연간 손실액은 2900여만원, 15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 수준의 권역별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면 연간 65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는 국립재활원재활병원 등 재활전문병원 10개소를 지정해 전국 6개 권역에서 지역거점재활병원 형태로 운영하고 있지만, 중증장애어린이들의 접근성은 크게 떨어진다.
신종현 보바스어린이의원 원장은 “수입구조는 100%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 의존하는데 반해 지출 구조는 경제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재활치료 보험수가의 한계 외에도 다양한 치료적 접근을 위한 그룹치료, 재활캠프, 부모교육 등이 필요하지만, 수가 체계에 적용되지 않아 민간의료기관에서 어린이재활치료시설을 운영하는 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턱없이 부족한 어린이재활병원 = 국내에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장애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전국을 떠돌고 있다. 집중적인 조기 재활치료와 중장기적 재활치료가 동시에 요구되지만,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국내 병원급 재활의료기관은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의 15%, 재활의학과의원은 전체 의원의 1%에 불과하다.
장애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 중인 푸르메재단에 따르면 전국 45개 어린이병원 중 재활의학과가 설치된 어린이병원은 지난 2011년을 기준으로 보바스어린이병원과 서울시어린이병원, 서울대어린이병원, 부산대어린이병원 등 전국에 4곳밖에 없다. 일본의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이 202개, 독일 180개, 미국 40개에 이르는 것과 비교된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재활 관련 치료시설을 찾아도 최소 수개월에서 2년 정도는 대기해야만 한다. 한 병원에서 2~3개월 치료하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부모와 장애어린이가 떠돌 수밖에 없어 이른바 ‘재활 유목민’, ‘재활 난민’이 양산되는 실정이다.
▲비등해지는 소아재활 치료 지원 = 고령화 추세로 후천적 장애어린이 발생 비율이 증가하면서 국내 장애어린이들의 효율적 재활치료를 위해 정부가 나서 재활의료수가체계를 바꾸고, 공공의료 차원에서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해지고 있다.
성인영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25일 푸르메재단 주최로 열린 어린이 재활치료 관련 심포지엄에서 “장애어린이 재활을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과 조기중재 치료의 효율적 적용을 위한 중앙의뢰체계 조기중재 종합센터의 운영이 매우 필요하다”며 “미래세대인 어린이가 효과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착한 적자를 내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대해서는 정부의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린이재활병원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와 치료의 질 유지, 치료사 고용 불안 등 여러 가지 어려움과 치료의 질 향상에 대한 부모들의 높은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이사장인 김명옥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어린이재활병원의 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치료수가 조정이 시급하다”면서 “의사의 처방이나 감독 없이 음성적 소아치료를 야기하는 발달재활서비스(바우처) 제도의 개선과 뇌성마비에 대한 산정특례 적용으로 치료비 부담을 줄여줘 치료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활치료의 진료비 보상 기준을 원가에서 사회적 가치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지낸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낸 의료, 예컨대 더 인간적이고 더 충실한 진료, 예방을 강조하고 일상 복귀를 돕는 의료에 더 많은 비용을 갚아야 한다”며 “심지어 원가가 더 적게 들어도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한 진료수가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공감, 입법 추진 속도 = 최근 정치권에서는 재활치료를 지원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병원급 의료기관의 종류에 재활병원을 신설해 체계적으로 재활병원을 관리하고 환자들에게 양질의 재활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의료법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한재활병원협회는 “의료법에 재활병원 제도를 명시한 종별분리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한 입법”이라며 “대학병원에서 수술 등 급성기 치료를 마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재활병원의 전문화된 재활의료서비스를 통해 건강을 회복해 조기에 가정과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확고한 재활의료전달 체계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어린이재활병원 역시 제도적 지원근거가 필요하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은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필수 보건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기관은 개설주체가 민간이라 할지라도 공익성이 있으므로, 공공의료 제공 주체로 인식하는 현행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어린이재활병원 지원 근거를 명시해야 한다”고 입법과제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