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선 환자 정신적 고통 암 환자보다 ‘심각’
아주 가벼운 증상만으로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건선은 만성이며, 난치성인데다 전염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사고 있어 이 병에 시달리는 환자로서는 갑갑하기 그지없다. 특히 치료 전보다 상태가 뚜렷이 호전돼도 환자들의 삶의 질이 쉽사리 개선되지 않아 효과적인 치료와 정책적 지원이 동시에 요구된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건선은 만성 면역매개성 질환이다. 피부가 건조해지거나 면역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면역작용이 과도해지는 것이 원인이다. 이 때문에 각질세포의 성장주기가 빨라져 붉은 색의 판상 형태로 은백색의 비늘이 피부를 덮는다. 이러한 판상 건선 환자는 국내 건선 환자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건선 환자의 75%는 매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며, 54%는 우울감, 31%는 경제적 고통, 8%는 재택근무로 인한 근무제한을 호소한다. 고려대 구로병원 피부과 송해준 교수는 “팔다리는 물론, 두피와 얼굴, 성기 부위에 발병해 환자의 스트레스가 심하고, 환자의 20% 이상이 사회 초년생인 21~25세 사이에 발병해 지속되는 독특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편적으로 건선의 정도는 면적과 색깔, 두께, 각질 등을 고려한 PASI(Psoriasis Area Severity Index, 건선 면적 중등도 지표) 점수를 통해 7등급으로 분류한다. 건선 치료에서는 PASI 75를 환자 만족과 치료 효과의 기준으로 삼는다. PASI 75는 치료 전보다 상태가 75% 호전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건선 환자의 치료 만족도는 매우 저조하다. 송 교수는 “PASI 75인 환자의 24%만 치료 효과에 만족한다”며 “이는 나머지 환자들이 여전히 생활에 지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치료 전보다 상태가 100% 호전된 PASI 100인 환자의 치료만족도는 65%, PASI 90인 환자는 44%에 그치고 있다.
여러 해외 연구에 따르면 건선 환자는 증상이 심각할수록 사망률도 높다. 당뇨병 등 대사성질환과 우울증, 관절염, 심혈관질환 등 여러 질환이 동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전체 건선 환자 10명 중 3명은 건선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 송 교수는 “중증 건선 환자의 대사성질환 발병률은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높다”며 “정신건강지수를 1백점 만점으로 했을 때 건선 환자는 46점으로 49점인 암 환자보다 낮다”고 말했다.
건선은 증상이 가벼우면 피부에 바르는 약이나, 광선요법으로 치료한다. 이러한 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비타민 A 유도체인 레티노이드나 사이클로스포린, 메토트렉세이트 성분의 먹는 약을 쓴다. 먹는 약을 통한 전신 치료법은 신장이나 간에 독성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 환자의 3/4은 스테로이드 연고나 비타민 D 연고를 사용하며, 나머지는 주로 먹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건선을 유발하는 면역학적 기전이 하나둘 규명되면서 피부나 근육에 주사하는 생물학적 제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건선을 유발하는 종양괴사인자(TNF-α)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이타너셉트, 인플릭시맙, 아달리무맙 성분)에 이어 면역 단백질의 일종인 인터루킨23을 억제하는 치료제(우스테키누맙 성분)가 등장해 생물학적 제제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새로운 인터루킨17 억제제(세쿠키누맙 성분)가 보건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현재 3상 후기 임상이 진행 중인 이 치료제는 4주차, 6주차 PASI 도달률에서 우스테키누맙보다 우수한 효능을 입증했다. 인터루킨17은 인터루킨23보다 더 많은 피부세포와 감염대항세포가 필요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해 과도한 면역작용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물학적 제제는 효과가 우수하면서도 화학적 제제와 달리 부작용이 없고, 보통 주사제로 개발돼 사회적 제약이 적은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비용이 높고, 신약이라 장기적 부작용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단점도 있다. 류마티스질환과 베체트병, 크론병 등 다른 염증성 면역질환과 달리 건선은 산정특례(본인부담 10%)에 해당되지 않아 본인부담액이 60%에 이른다.
송 교수는 “우스테키누맙과 아달리무맙, 이타너셉트 등 피하주사 3종은 1100~1200만원, 정맥에 주사하는 인플릭시맙은 700만원 수준”이라며 “치료효과와 단점의 균형이 필요하지만,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부담 후 사후에 환급받는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어도 치료부담이 높아 적정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건선환자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