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췌장암... 생존율 20년째 제자리

난공불락 췌장암... 생존율 20년째 제자리

 

스티브 잡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패트릭 스웨이지...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이들이 소유한 막대한 부도 췌장암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의학의 발달로 전체 암 환자의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췌장암 환자만은 예외다. 전체 암 가운데 생존율이 가장 낮을뿐더러 지난 20여년간 생존율은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췌장암 환자의 평균 생존율은 8.7%에 불과하다. 20년간 생존율은 오히려 0.6% 줄었다. 치료성적이 안 좋은 폐암과 간암의 5년 생존율도 각각 21.9%, 30.1%로 췌장암보다 훨씬 좋고, 같은 기간 생존율은 평균 10~20% 증가했다.

췌장암은 병기가 초기여도 5년 생존율이 낮은 암이다. 미국 SEER 프로그램에 따르면 췌장암은 종양이 다른 장기나 인접한 조직을 침범하지 않아도 5년 생존율이 27.4%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난공불락인데 조기발견도 안 돼 치료성적은 더욱 떨어진다. 김호각 대한췌담도학회 이사장(대구가톨릭의대 소화기내과)은 “특징적인 증상이 없고, 조기진단 방법이 개발돼 있지 않아 80% 이상의 환자가 수술이 불가능한 3, 4기 암 상태에서 진단된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췌장암에 아주 효과적인 항암제는 없다.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수술을 하려면 조기진단을 통해 초기 췌장암의 비율을 높여야 전반적인 치료 성적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초기 췌장암은 잘 치료하면 20% 정도의 환자에서 완치까지 바라볼 수 있고, 1기에 수술을 받으면 완치율은 2배 이상이 된다”며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은 대체의학보다 항암치료를 최우선적으로 선택해야 증상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췌장암은 우리나라 암 발생 8위, 암 사망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56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매일 12명의 췌장암 환자가 발생해 이 중 11명이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췌장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중앙생존기간이 14개월에 불과해 다른 암보다 경제인구의 조기사망이 많아 노동력 손실에 따른 경제적 파급력이 크다. 국내에서 췌장암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매년 867억원, 환자 1인당 치료비는 암종 중 최대 수준인 6400만원으로 추산된다.

췌장암 투병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도 현실적으로 큰 문제이다. 환자의 80%는 췌장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호스피스 등 요양시설과 완화의료, 치료 지원 등도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췌장암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췌장이 뭔지도 잘 모르고, 일단 췌장암에 걸리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렇다보니 암 정복을 위한 사업과 투자, 연구지원에서 췌장암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대한췌담도학회와 한국췌장외과연구회, 한국췌장암네트워크는 세계 췌장암의 날인 지난 13일 프레스센터에서 췌장암 극복을 위한 ‘퍼플 리본(purple ribbon)’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출범을 준비 중인 한국췌장암네트워크의 김선회 대표(서울대병원 외과)는 “췌장암에 대한 국민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인식을 높여 경각심을 주고, 한편으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췌장암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캠페인 취지를 밝혔다.

한국췌장암네트워크는 퍼플 리본 캠페인을 통해 조기진단과 연구지원, 정책 자문, 임상참여, 교육홍보, 기부 등 췌장암 퇴치를 위한 포괄적 접근에 나설 방침이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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