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들 감정에 호소하는 증언에 넘어갈까

배심원들 감정에 호소하는 증언에 넘어갈까

재판 과정에 참여하는 미국 배심원들은 범죄 유무를 판단할 권리가 있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냉철해야 한다. 그렇다면 배심원들은 원고의 눈물이나 감정적 호소에 휘둘리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미국 배심원제도와 프랑스 등의 참심제가 혼합된 형태인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있다. 그런데 국내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있고 강제력이 없는 반면, 미국 배심원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국민이 재판절차에 참여하는 방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배심원은 과연 얼마나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가령 살인사건 희생자 가족인 원고 측이 평범한 일상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됐다며 눈물을 흘린다면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범죄 현장의 참혹한 사진을 봤을 때는 또 어떨까.

 

일본 게이오대학교 연구팀은 학생 127명을 모집해 모의재판 상황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배심원 역할을 맡도록 했다. 연구팀은 학생들에게 한 노숙자가 어린 여학생을 살해했으며 이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면 노숙자의 삶을 면하게 된다는 내용을 들려주었다.

노숙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검찰의 증거는 미약한 상황이며 피고인 노숙자는 자신의 범죄를 인정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희생자 아버지의 심정이 담긴 증언을 듣지 못했고, 희생자의 사체 사진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판결을 내렸다. 이들 중 46%가 노숙자를 유죄라고 판단했다.

반면 또 한 그룹은 희생자 아버지의 슬픈 감정이 실린 증언을 들었다. 이 증언에는 딸이 얼마나 영리하고 친절한 아이였는지, 가해자에 대해 얼마나 큰 분노감을 느끼고 있는지 등의 감정적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상 이와 같은 증언은 피고의 죄를 결정하는 증거가 되기에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에 속한 학생들은 71%가 노숙자를 유죄라고 밝혔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희생자의 사체가 담긴 사진을 봤을 때는 유죄라는 학생의 비율이 79%까지 높아졌다.

희생자 아버지의 증언과 사진은 학생들에게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노숙자를 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피고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버지의 증언을 듣지 않은 학생의 16%가 사형을 요구한 반면, 증언을 들은 학생은 33%가 사형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원고의 감정이 실린 정보는 배심원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확실한 물증 없이 감정에 휘둘린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정신과학, 심리학, 법률(Psychiatry, Psychology and Law)저널’에 실렸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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