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만 좋으면 뭘해” 영 못마땅한 비너스의 눈빛
●배정원의 Sex in Art(29)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와 마르스』
볼 때마다 유쾌하고 웃음이 나는 그림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길게 채우고 있는 두 남녀가 있다. 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잘생긴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애틋한 표정의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기 사티로스(반은 사람, 반은 염소의 몸을 가진 요정들로, 흔히 큐피드보다 훨씬 더 분방하고 성적인 자유를 상징한다)들이 장난질을 치고 있다. 그림의 색감은 난색 위주여서 온화하고 따뜻하다.
유럽 최초의 초기 르네상스 여성 누드라고 일컬어지는 『비너스의 탄생』, 『봄』으로 유명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와 마르스』이다. 그림 왼쪽의 풀밭 쿠션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아있는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를 칭하는데,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아프로디테)’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애욕의 여신이다. 오른쪽 잠에 취한 남자는 전쟁의 신 마르스이다. 보통 마르스는 전쟁의 신이기 때문에 화가들에 의해 우람하고 남성적인 근육을 가진 몸으로 그려지는데, 팔다리를 비현실적으로 길쭉하게 그리길 좋아했던 보티첼리는 그마저 고전적이고, 평화로운(?) 몸을 가진 남자로 그려 놓았다.
얼마나 격렬한 사랑이었는지, 남자는 입마저 벌리고 혼곤하게 잠에 떨어져 있는데, 여자는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잠자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 못마땅한 분위기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기 사티로스들은 뿔고동을 잠든 남자의 귀에 힘주어 불어대기도 하고, 그의 기다란 창을 가지고 요란스레 놀고 있지만 남자는 전혀 깨어날 낌새가 없다. 그림의 분위기는 여자가 불러일으키는 긴장을 아기 사티로스들이 장난으로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데, 그중 압권은 비너스 옆에 서 있는 커다란 투구를 쓴 녀석이다. 이 녀석은 너무 큰 투구 때문에 앞도 안 보이는 터라 이들의 장난스런 행동들은 마치 디즈니 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다.
이 그림을 그린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원래 이름은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피’인데 ‘보티첼리’란 ‘작은 술통’이란 뜻으로 그의 별명에서 가져왔다.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태어나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었던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온화하고 때로는 모호하며,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의 배경에는 훈풍에 날리는 장미꽃들, 화려한 꽃그림이 아름다운 망토, 드레스 등이 등장해 르네상스 시대 특유의 장식성을 보여준다.
보티첼리의 그림 속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델은 명문가의 딸이며, 1475년 기사들의 마상대회에서 ‘미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이다. 그녀는 22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보티첼리는 그녀를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생각해 평생 그의 그림 모델로 그녀를 살려 냈으며 심지어 죽을 때 그녀의 발치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간절하게 생각했다.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에서의 비너스도 그녀인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파리하고 우수어린 표정을 보면 보티첼리의 모델을 서던 이때도 건강이 그리 좋진 않았던 듯하다.
어쨌든 이 그림을 보면서 혹자는 전쟁도 이기는 사랑의 힘이라든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든지 하지만, 성전문가로서 보는 이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좀 다르다. 그림에서 남자는 사정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사정 후 극심한 피로감으로 잠에 빠져 있으나, 여자는 그다지 만족스런 관계가 아니었던 듯싶다. 대개 ‘섹스 후 남자는 테스토스테론의 고갈로 피로감을 느껴 잠을 자고 싶은데 반해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를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자 역시 극치감을 강렬하게 느끼면 자고 싶다. 그래서 섹스를 최고의 수면제라 하는 것이다. 다만 남자와 달리 잠깐의 돌아봄이 필요할 뿐이다. 섹스 후 땀에 젖은 이마에 간단하게 입맞춤 해주는 것,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것,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것, 입에 가볍게 키스해 주는 것으로 여자는 섹스의 황홀함을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섹스 후 아내나 파트너가 벌떡 일어나서 ‘아이의 숙제를 봐 준다’거나 ‘TV를 보러 간다’거나하며, 볼일(?)을 보러 왔다 갔다 한다면 그녀가 실은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80%가 넘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자기가 잘 느끼는 여자라는 걸 보여 주려고, 혹은 빨리 끝내려고 거짓오르가즘을 연기한다. 고로 저렇게 애틋한 눈빛으로 잠자는 마르스를 바라보는 비너스를 보면서 아마도 마르스는 힘은 좋을지 몰라도 섹스의 기술이나, 여자의 섹스를 모르는 남자인가보다 하는 것이다. 비너스가 누구인가? 애욕의 여신이며, 그녀가 늘 허리에 매고 있는 ‘케스토스 히마스’라고 불리는 마법의 허리띠에는 ‘사랑의 기술’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신이든 인간이든 누구든 육체적인 사랑으로 유혹할 수 있다. 이렇게 섹스의 기술에 있어서도 마르스를 능가할지 모르는 비너스는 못내 아쉬워 보인다.
여자의 성은 남자와 다른 점이 있어서, 남자들은 여자의 벗은 몸을(다 벗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성적 흥분을 하고 발기가 되는 데 반해 여자가 흥분에 도달하려면 끊임없는 남자의 자극이 필요하다. 때로는 속삭임으로, 부드러운 터치로, 달콤한 애무로, 그야말로 남자가 만들어 내는 공감각의 동시적 자극들로 인해 여자는 성적 흥분에 더욱 멋지게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여자의 성욕이 수동적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남자보다 훨씬 파트너의 직접적인 자극이 필요하단 뜻이다. 이런 자극을 통해 여자의 질은 윤활이 되고,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에겐 애무가 더욱 중요하다. 또 심지어 삽입 없이 애무만으로도 오르가즘에 이르는 여자들이 80%가 넘는다. 반대로 삽입만 있는 섹스에서 여자는 흥분도 만족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신혼부부의 혼수품 서랍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다는 이 그림을 통해 보티첼리는 신랑에게 ‘신부가 만족하기 전에는 잠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어쨌든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가 흥분에 이르기도 전에 삽입을 서두르고, 삽입 후에는 자기만 극치감을 느끼고 잠에 떨어져 버리는, 그래서 아내들을 비너스의 눈빛이 되게 하는 많은 남자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반성하시라!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