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과감하고 충격적인 누드
●이재길의 누드여행(4)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누드 작품세계 ②
1900년대 전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회화주의 사진이 성행하던 때, 사진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뒤엎어버린 작가가 나타났다. 회화주의에서 탈피하는 ‘사진 분리파’ 운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였다.
스티글리츠의 작품세계는 사실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아내면서도 내면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의 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Equivalent’다. 대상 그대로의 본질이 내면의 세계와 동일시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단어로, 그의 작품 중 ‘구름’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Equivalent’의 본질적 내막을 들여다보면 누드 작품세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글리츠가 사실주의 사진을 찍으며 가장 먼저 바라본 대상은 아내 ‘조지아 오키프’였다. 개인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의 누드 작품시리즈는 과감하고 충격적이었다. 사실주의 사진에 입각한 『누드』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드러낸 가슴,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는 표정,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성의 음부 등이 담겨져 있다. 아내의 작은 몸짓, 신체의 작은 부위까지 세밀하게 훑어보았던 그의 시선 속에는 과연 어떠한 세계가 비춰졌을까 궁금하다.
스티글리츠는 낭만주의자였다. 창가에 비치는 고요한 빛줄기가 오키프를 향할 때 그는 셔터를 눌렀다. 어두운 방 안에서 벗은 몸으로 창가의 은은한 빛줄기를 받으며 자유로이 서 있는 오키프의 모습은 그녀를 향한 그의 내면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때 오키프의 모습은 완벽한 역광의 형체였으리라. 그러나 솜사탕같이 곱고 부드러운 질감, 평온한 표정, 정확한 사진노출과 화면 비율은 그가 얼마나 오키프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스티글리츠에게 ‘창가’는 본질적 장소를 의미한다. 마치 그의 내면의 상황을 추측케 하듯, 어두운 창가 안의 공간이 오키프를 향한 빛 한 줄기로 밝혀져 있다. 창 앞의 오키프는 마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듯, 편안한 시선과 표정으로 렌즈 앞에 있다. 그리고 가슴을 드러낸 채 모호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모습이다.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배경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오로지 자신의 예술철학을 강조하는 스티글리츠의 모습 또한 엿볼 수 있다. 창문 너머와 실내의 빛의 양을 정확히 계산하고, 대형카메라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이용하여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장면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그의 절대적 예술성이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사실 스티글리츠가 그의 아내 조지아 오키프의 누드 사진을 찍은 이유는 그녀를 향한 마음의 고백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그의 예술세계의 중심에는 ‘누드’ 즉,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가 “예술은 결코 아름다움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자신만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을 통해 예술세계를 확장시켰다.
‘누드’ 그 자체를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바라보았던 스티글리츠의 작업태도는 예술이 담아내는 아름다움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는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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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 자유... 나는 왜 여성 누드에 주목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