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폭언-폭행...모두가 멍 든다

의료계 폭언-폭행...모두가 멍 든다

 

모두를 멍들게 하는 폭언폭행,

의료인 4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상사의 막말’과 관련한 조사 결과에서 70% 이상이 상사의 무례한 언행으로 크고 작은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간담 서늘한 연구결과인가. 설마 하며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연구사례는 그나마 민주적인 업무 분위기가 안착된 미국의 경우이다. 미국의 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20년 이상 17개 업종을 조사 분석한 자료에서 나온 결과이다. 하물며 우리나라 의료계는 어떠하겠는가.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의료계 종사자 1만 8천 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중 5명 꼴로 폭언을 경험하고 8%에 가까운 1천 여명 이상은 폭행까지도 경험 했다. 주로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이 자행되지만 가해자에는 의사도 포함돼 있다.

의료서비스 분야는 서열문화가 팽배하고, 권위적이고 보수적 조직문화가 일찍이 자리잡고 있다. 의료인들 사이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장치는 서로가 실수 하지 않고 긴장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폭언은 자연스레 받아 들이고 서로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여겨 왔다.

사실 언어폭력을 당한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업무의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존연구에 따르면 언어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개인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팀워크를 저해하고 개인의 창의적인 업무 능률을 떨어뜨린다. 결국 언어폭력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급기야 국내 한 대기업은 부하에게 언어폭력을 행하는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 신고센터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을 막고자 전사적인 쇄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언어폭력은 보수집단 상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고객이란 허울을 쓰고 진상환자가 등장하면서 의사들도 폐해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환자의 권익이 높아지고, 미성숙된 서비스 소비문화가 더해져 의료진들도 폭언과 폭행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그간 환자의 아픔에 대한 격한 반응 정도로만 여기는 정 많은 우리 내 문화도 환자의 폭언과 폭행을 용인하는 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타 업종에 비해 막말과 폭행이 자행되는 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엄히 다스리는 법제도가 속도를 못 내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폭언과 폭력은 서로간 지켜야 할 매너와 에티켓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 노동자들에게 가해자는 인권유린으로 결부된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료인들 사이에서 언어폭력과 폭행은 진료실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언어폭력과 폭행을 줄이려는 노력도 함께 따라야 한다. 의료인들의 적극적 개입을 필요로 한다. 흥분하고 이성을 잃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오해를 하지 않고 감정에 격분하지 않도록 정확한 의사소통이 있어야 한다.

또한 병원 내 폭언과 폭행에 희생됐다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주고 받는데 어색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인식개선에 필요한 교육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교폭력은 방조자도 폭력 가담자로 처벌한다. 하물며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의료현장은 용서가 미덕이 될 수 없다. 권위를 앞세워 조직의 기강을 잡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환자나 보호자로부터의 폭언과 폭행을 근절하기 위해선 의료인들 역시 가해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바로 모두가 잃는 게 없는 제로섬게임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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