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이해-배려심, 내 몸을 갉아 먹는다
●박민수 원장의 거꾸로 건강법(32)
병원을 찾는 성인남녀의 가장 큰 병인은 스트레스이다. 한국인의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간관계이다. 한국 사회는 관계 사회이기 때문에 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흔히들 원만한 인간관계는 행복의 조건이라 말한다. 인간적 온기가 남은 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사회보다 더 행복하다는 점에는 별 이론이 없다. 한국에서 지낸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은 한국인의 친밀하고 격이 없는 인간관계가 부럽다고들 한다. 하지만 좀 더 살아본 외국인은 한국적 인간관계에서 적잖은 모순을 발견한다. 그들은 한국인이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사실을 종종 지적한다. 별 상관없는 일까지 굳이 남의 시선을 따지는 한국인의 성향이 특이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왜곡된 구석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종속적 인간관계라고 할까. 남이 이러니까 나도 이러고, 남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는 고정관념이나 불안에 휩싸여 사는 듯하다. 예의, 체면, 염치, 눈치 같은 게임룰이 사회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이런 타인지향의 마음구조는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을 부른다.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내막에는 이런 한국적 관계의 압박이 도사리고 있다. 내 마음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남의 행동과 말이 항상 나를 상처주고 괴롭히는 탓이다.
우리들의 정신건강의 가장 큰 적은 사실 불만족이다. 불만족의 근원은 관계에서 온다. 남들과의 비교는 불만족의 근원이다. 만족할 줄 알면 음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족할 줄 알면 더 과로하며 일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남의 말이나 시선에 그리 개의치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술과 담배 같은 온갖 중독물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취약한 심리 가운데 하나가 나의 이익이 상대의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나만 이길 것이 아니라 상대도 같이 이익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면 자신의 이익을 선뜻 요구하지 못한다. 함께 이익이 생기지 않은 일에 선선히 응하기 힘들어진다.
때로 이런 상호주의적 인간관계 덕분에 서로가 무한한 에너지를 발휘하며 지금의 성과들을 이끌어냈는지도 모른다. 또 이런 지극한 이타심이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해온 바탕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이타주의가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지금 우리는 관계과잉 상태이다. 타인지향적 삶이 만든 관계과잉 심리습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이타심을 가지는 마음이 지나쳐 내 몸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관계가 내 몸을 잠식하는 독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설사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해도 결코 자기훼손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배려는 나를 지키고 남는 잉여를 가지고 행해야 순수하다. 나를 해친 배려나 희생이란 결국 증오와 원망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자주 쓰이는 게임이론은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시선불안증이나 타인염려증에 젖어 자신을 망치기 일쑤인 사람이라면 삶에서 이 게임이론의 이해와 적용이 필요하다. 일단 인생은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나를 비롯해 수많은 주체들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인간관계의 처세 역시 게임의 룰을 따를 필요가 있다. 게임이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는 매우 비정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상반된 의견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두 주체 사이에는 제로섬 법칙이 지배한다. 한 쪽이 승리하면 한 쪽은 실패하고 결국 둘의 합은 영이 되고 마다는 것이다. 이런 생리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주관적인 인간론을 펼치다가는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
앞서 한국인의 타인지향이 매우 모순적이라는 말을 했다. 겉으로는 타인지향이지만 속마음은 딴판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미 계산된 연기나 의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매우 불확정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믿었던 측근에게 배신당한다거나, 선후배가 어려울 때 등을 돌린다든가,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따돌림이나 낮은 평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조건과 상황이 개입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게임의 룰을 잘 몰랐던 자신의 탓이 크다.
인간관계 게임이론의 원칙은 여하한 경우라도 내 정신과 육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심리적 방어선과 견고한 생활습관을 지켜내는 것이다. 남의 부탁이나 시선, 압력 혹은 희생강요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외적 요구가 반복되더라도 자신만의 인간관계 게임룰을 적용해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의 기본적인 처세는 제대로 하되 결코 내 건강과 내 몸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사실 이 점이 한국의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희생하고 누군가는 그 희생을 즐긴다거나, 나는 화병에 속이 곪는데 상대편의 삶은 편안하기 그지없다면 이는 결국 나의 파괴, 나아가서 관계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상처받아선 안 된다. 이제 내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쪽으로 관계의 게임룰을 재편성하기 바란다.
이런 관계가 에너지를 창출하여 나를 건강하게 하는 진보적이고 생산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궁극적인 윈-윈의 결과를 가져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내 마음과 몸이 최적상태를 유지하면 나는 주변에 더 많은 에너지와 행복을 전할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의 물적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내 몸을 지켜 심리적, 물질적 잉여를 만들고, 그 성과들을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게임법칙의 첫 번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켜서 얻어낸 성과들을 나누어 즐겁고 지속적인 게임이 가능하도록 인간관계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관계 디톡스 마음잡기
1.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나와 내 몸이다.
2.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
3. 사랑의 전제조건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믿음 이상의 자기투자이다.
4. 나를 지킬 수 있는 한도에서 남을 사랑하라. 대신 결코 대가를 바라지 말라.
5. 상대가 자기에게 배려나 양보를 해줄 거라는 기대를 버린다. 혹 상대의 온정과 희생을 베풀면 진심으로 감사하라. 대신 다음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6. 원-윈은 힘들고 드문 일이다. 대개는 제로-섬 관계이다. 한편은 손해를 보고 한편은 이득을 얻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손해라는 느낌이 들 때면 최대한 심리적 방어를 펼치라. 내 마음까지 다치면 더 큰 손해이다.
7. 게임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다면 최선을 다해 실행하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나아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뒤에 후회를 남긴다. 할 말은 해라.
8. 진인사대천명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상대나 타인의 반응에는 둔감해져라. 좋은 반응이라면 반길 일이지만 아니라도 그뿐이다.
9. 남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마라. 때로 과감히 포기해야할 인간관계도 생기는 법이다. 연연하지 마라. 대신 나를 응원하고 행복하게 만들 일들에 더 집중하라.
10. 인간사 새옹지마다.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쁜 때도 있는 법이다. 단 나쁜 시간을 빨리 줄이는 것은 내 몫이다. 빨리 줄일수록 좋은 시간을 빨리 오고 또 그만큼 길어진다. 당연히 좋은 시간은 반드시 오는 법이다. 나쁠 때도 좋은 시간을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