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도 병... 중증 환자 사회적 지원 필요”
13년간 난치성 중증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는 배우 윤사비나씨. 23살 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그는 전국을 돌며 온갖 치료법에 기대봤지만, 소용없었다. 고가의 샴푸와 화장품, 오일, 연고 등 여러 의약외품도 무용지물이었다.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경제적, 정신적 손실만 커졌다.
대한모발학회 주최로 지난 28일 열린 탈모증 환자의 치료지원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 환자 대표로 참석한 윤사비나씨는 “비의약품의 과대광고가 환자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탈모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대인관계를 위축시키는 질환이지만, 이를 질환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미진한 게 현실이다. 모발학회에 따르면 탈모를 인지한 환자들은 평균 4회가 넘는 자가 치료를 시도하고, 7년이 지난 뒤에야 병원을 찾고 있다. 모발학회는 “의약외품과 화장품 등이 과장된 효능과 효과를 표기하며 허위 광고를 진행해 환자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모발학회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탈모 환자의 올바른 의학적 치료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심우영 학회장(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이 좌장을 맡은 이날 토론회에서 강훈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탈모가 단순한 증상이 아닌 ‘질환’이라는 인식을 정착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중등도 이상의 원형탈모증 환자는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고 사회생활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외모 장애 인정과 가발의 의료 보장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발학회에 따르면 현재 광범위한 난치성 원형탈모증을 지닌 환자에게 가장 추천되는 치료법 중 하나는 DPCP(디페닐사이클로프로페논)라는 물질을 탈모부에 바르는 면역치료법이다. 비교적 저렴하면서 매우 효과적이지만, 국내에서는 불법 치료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최광성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는 “DPCP 치료는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발표돼 대한피부과학회 교과서와 전 세계 모든 중요 피부과학 교과서에서 가장 추천되는 치료법으로 기술돼 있으며, 지난 2월 미국 FDA에서 대량 의약품 물질 목록에 등재가 결정된 바 있다”며 “학회 차원에서도 원형탈모증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DPCP 면역치료가 의약품으로 승인 받기 위해 신의료기술을 신청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비의학적 치료가 중심이 된 기형적 구조의 국내 탈모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허창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는 “일부 일반의약품은 올바르지 않은 질환명을 사용하며, 적응증에 맞지 않는 남성형 탈모 환자를 타깃으로 광고하며 환자들의 혼선을 초래하므로 탈모증 환자의 혼란을 야기하는 의약품, 의약외품, 화장품의 제자리를 바로 찾기 위한 제도적 장치 기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학회의 의견에 보건당국은 국민적 합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중증 안도로겐성 탈모증 환자의 보험 지원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탈모증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장애인에 대한 정의는 장애인 복지법을 따르는 만큼, 외모 장애 인정 역시 의학적 검토와 함께 장애계와의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최영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약품심사조정과장은 “먼저 의약외품과 의약품의 차이, 양모제, 육모제와 같은 용어를 국민들에게 올바르게 알리도록 학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올해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외품 재평가 제도가 마련돼 탈모 샴푸 제품에 대한 재평가를 고려하고 있고,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하는 일반의약품의 효능, 효과에 대한 용어 재정비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