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서비스는 ‘공포 마케팅’ 온상?

의료 서비스는 ‘공포 마케팅’ 온상?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강력한 구매력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무지를 이용해 불안감을 조장하고 경쟁심리를 부추겨 소비를 이끄는 것이 바로 공포마케팅이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데 있어 사람들의 ‘공포’라는 감정을 잘 만 활용하면 가장 쉽고 가장 빠른 구매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공포마케팅은 언제나 대박 아이템을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편리해 사용하던 믹스커피에서 몸에 좋지 않았던 특정성분을 뺀 것을 강조하며 믹스커피의 웰빙바람을 불어 넣었던 회사가 있었다. 건강해 지려면 이 회사의 커피믹스를 먹어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이 회사덕분에 경쟁사들이 졸지에 신제품개발에 열을 올리게 됐고, 미투상품 덕분에 소비자들은 조금 더 다양한 인스턴트 커피시장을 만나게 됐다.

인공감미료 시장에서도 업체들이 보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를 도구 삼아 고급을 추구하면서 너도나도 고가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인공감미료의 위해성이 논란거리로 일면서 조미료를 자연유래 천연재료의 프리미엄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MSG시장이지만 기왕이면 좀더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아마도 ‘공포’라는 도구가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하는 곳은 사교육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남다른 교육열에 편승해 학습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 겁주고 지금도 늦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죄책감을 느끼며 서둘러 무리를 해서라도 학습에 뒤쳐지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에 대한 소비는 자식에 대한 관심이며 사랑으로 귀결된다.

공포마케팅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 역시 의료분야이다. 의사들의 말 한마디는 거의 바이블수준에 가깝다. 공급자인 의사가 환자를 교육하고 회복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절대적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극히 제한된 환자 정보를 독점하고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 신체와 관련된 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의료서비스는 공포마케팅의 온상이 될 수 있다.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선택을 저울질 할 사람은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의사의 표현이 어떤 식으로 강제성을 띠느냐에 따라 검사범위와 치료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환자가 지출해야 할 치료비가 달라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비보험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환자는 조금 민감해 질 것이다. 비보험 치료는 일반 보험치료보다 비싸 검사나 치료에 대한 정확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검사와 치료에 필요성, 차별성, 장단점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이해시켜야 한다.

환자가 인지 못한 상태에서 비보험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근 슬쩍 얼버무렸다간 얼굴 붉힐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또한 운 좋게 아무 말 없이 치료비를 내고 나간 환자도 병원 밖을 나가는 순간 나쁜 소문을 뿌리고 다닐 소지가 크다.

환자가 병원에서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가정해 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다른 병원 의사에게 수술여부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물어 봤고, 그 의사로부터 당장에 수술은 필요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환자는 의사의 상술에 속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 생각할 것이다.

비록 의사마다 소견이 달라 치료계획과 방법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경우엔 양심적인 진료임에도 수술을 권했던 의사마저도 졸지에 장삿속 챙기는 몹쓸 의료인이 되고 만다. 의료서비스는 의사가 전문적 정보를 이용해 환자의 공포를 자극시키고 치료를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래서 방어적 설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치료의 독촉은 기본적인 진료임에도 과잉진료로 해석될 수 있고, 환자의 의료쇼핑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해의 소지가 큰 만큼 치료, 검사, 수술을 권하고 설득하는데 있어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충분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 그게 답이다.

공포마케팅은 소비를 결정하는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소비 후 자신이 필요이상의 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 때 소비자의 분노를 사게 된다. 무지한 자신이 호구로 이용됐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뒷짐지고 있을 소비자는 어디에도 없다. 의사는 환자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이에 공포마케팅의 신중한 접근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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