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지? 갑자기 입을 굳게 닫는 사람들
편안한 환경에선 말을 잘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입을 굳게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말을 하지 않지만 치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구강구조나 성대 기능의 이상으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뇌 손상의 영향을 받는 실어증과도 다르다. 이들은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상황에서는 말을 잘 한다. 집에서 부모나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나 직장 혹은 공공장소처럼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 처하면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선택적 함구증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 공포증’의 극단적인 징후라고 보고 있고, 일각에서는 자폐증과 연관을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최근 ‘심리학에 관한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 in Psychology)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작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선택적 함구증을 가지고 있는 실험참가자 5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실험참가자 중 4명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이용해 상세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남은 한명은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아론 워커다. 아론은 선택적 함구증을 거의 극복한 상태로, 이 증상에 시달리는 동안 기록했던 메모를 이번 연구에 제공했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사람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발견됐다. 한 실험참가자는 함구증을 보이는 모습과 자신을 별개로 인식했다. 이런 증상을 보인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의식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17살 때부터 이 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26살의 이 실험참가자는 오직 부모와만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며 “부모와 있을 때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실험참가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침묵을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침묵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살인 이 남성은 8살 때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보였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역사수업 시간에 반 학생 전원이 책을 읽었는데 선생님이 나만 빼놓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낭비했다고 후회하는 실험참가자도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평범하게 행하는 학교 다니기, 직업 찾기, 대인관계 형성하기 등을 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극심한 후회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택적 함구증이 없었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증상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준 것은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아론 워커다. 그는 이 증상을 거의 극복한 사람의 입장에서 작은 일부터 한 개씩 실천해보라고 조언했다. 기차표 사기, 식사 주문하기처럼 사소한 일부터 한 개씩 해보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선택적 함구증을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사람 주변의 협조도 중요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줄 의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택적 함구증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핵심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