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버리는 딸
●배정원의 Sex in art(20)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연애담화
그림 속의 딸은 뭔가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서있다. 아버지는 상기된 표정이고, 뭐가 급한지 외출했던 차림 그대로이다. 허리에 찬 긴 칼은 풀지도 않은 채 바닥에 닿아 있고, 쓰고 나갔던 모자도 무릎 위에 얹은 채 있다.
같이 외출에서 돌아 온 듯한 엄마는 골똘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동이 없다. 시선은 내리깔고 표정이 담담한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이야기에 동감하는 모양이다.
가느다랗고 하얀 매끈한 목을 보여주며 뒷모습으로 서있는 딸은 모습이 다소곳하니 고분고분하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림의 주제가 『연애담화』, 혹은 『아버지의 훈계』인 것으로 보아 외출 나갔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딸의 연애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들어오자마자 딸을 불러 뭔가를 조언하는 중인 듯 보인다.
이들이 있는 곳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청소와 정리가 잘 된, 깔끔하고 우아한 중산층의 거실인 듯하다. 어둠을 배경으로 따뜻하고 밝은 빛이 가족들에게 집중되고, 인물들의 묘사가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특히 딸이 입은 은빛 실크드레스는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질감이 유별나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16세기 말 네덜란드 풍속화가인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Gerard ter Borch, 1617~1681)이다. 보르흐는 부유하고 교양 있는 집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여행하고 그곳의 화가들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묽은 물감을 번지기 기법으로 여러 번 칠해 공단을 정교하게 묘사한 화가로 특히 유명하며, 시민계급의 온건한 가정생활의 정경을 시적으로 그려낸 실내 풍속화가이다.
예부터 어느 나라나 아들은 가문의 계승과 번영을 위한 대리자로 훈육된 반면, 딸은 가사, 예절, 온순함과 인내심을 기르도록 양육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도 다르지 않아서 딸들의 연애담과 행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터, 아마도 그림 속의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남자와 딸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나, 혹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난한 연애를 경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상기된 아버지의 얼굴이 그리 기분 좋은 흔쾌한 표정이 아닌 것을 보면.
어머니와 아들의 끈끈함 못지않게 본능적으로 아버지와 딸은 서로에게 끌린다. 아버지에게 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여신이며, 영원히 보호해야 할 구원의 대상이다. 딸에게 아버지는 현실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형의 근원이며, 첫 애인이고, 영원히 자신을 보호해 줄 흑기사이다.
딸은 아버지에게 훈장과도 같은 존재로, 딸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딸 바보’ 아버지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역시 열렬하다. 예부터 딸을 낳은 기쁨을 ‘농와지경(弄瓦之慶)’이라 하여 흙으로 만든 실패를 가지고 노는 딸을 보는 즐거움을 비유했다, ‘딸아 딸아 우리 딸은/ 대보름 같은 내딸/ 물 아래 옥돌같은 내딸/ 제비세젯 날개 같은 내딸..’ 같은 제주민요도 ‘딸 바보’ 아버지의 노래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자란 딸은 자존감이 아주 높고, 당당하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녀의 자존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아버지가 연인같이 친구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딸은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할 확률이 더 낮고, 좋은 연인을 고르는 안목이 높다.
대개의 경우 엄마는 아들과, 아버지는 딸과 끈끈한 사랑과 애착의 복잡한 감정을 가진다. 프로이트는 이를 비교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을 만들었고, 그의 딸 안나 프로이드는 반대개념인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만들어 이 감정을 설명했다.
연애중인 남자들에게 가장 곤욕스럽고 겁이 나는 일은 연인의 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대개의 경우 한 번에 통과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일 텐데, 아버지로서도 딸의 연인을 만나는 것은 세모꼴 눈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영원히 자신만을 사랑할 것 같았던, 지금까지 금지옥엽 키운 내 딸의 몸과 마음을 통째로 가져가 버린 괘씸한 놈이니 말이다. 특히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된 딸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 손을 건네주는 순간 아버지는 가장 큰 상실감을 경험한다고 한다. 눈앞에서 연인을 잃는 공식적인 실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아버지를 사랑한 딸도 마음이 끌리는 이성이 생기면 대부분 아버지를 배신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랑에 눈이 먼 딸들은 아버지의 약점을 자신의 연인에게 알려주곤 한다. 특히 아버지에게 선을 보이는 그날 아버지의 취약한 점을 미리 알려주어 자신의 연인을 거든다.
내가 아는 지인 역시 자신의 연인을 평소 탐탁지 않아 하시는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려 첫 만남을 갖던 날, 자신의 연인에게 아버지의 약점을 일러주었다. 아버지가 평생 장교로 있던 시절을 명예스러워 하시는 것을 알고 있던 그 딸은 자신의 연인에게 그날 신사복을 입지 말고 장교정복을 입고 나오라고 코치한 것이다(다행히도 그녀의 연인이 당시 장교로 복무 중이었다). 딸의 애인이 마음에 안 들었던 아버지는 반대를 할 마음을 가지고 그를 만났는데, 장교정복을 입은 늠름한 그의 모습에 밤늦도록 군대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결국 그를 사윗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도처에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라를 배신하고 연인을 도왔던 딸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의 ‘낙랑공주’도 호동왕자에게 반해서 나라를 지켜주던 자명고를 칼로 찢어 나라를 망하게 했고, 그리스 신화에서도 이아손에 빠진 메데이아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황금양피를 차지하게 했으며,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영웅 테세우스를 위해 아버지를 배신했다.
또 니소스왕의 딸 스킬라는 심지어 적국의 왕인 미노스왕에게 반해 아버지를 지켜주던 신비의 보라색 머리카락을 아버지의 머리칼에서 베어내어 미노스왕에게 바친다. 스킬라 덕분에 미노스는 승리를 차지하게 되고 스킬라 아버지인 니소스왕은 죽음을 맞는다(물론 다른 영웅들과 달리 미소스왕은 스킬라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렇게 연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버리는 혹은 배신하는 이유는 어쩌면 어린 소녀였던 딸들이 성숙한 여자가 되려면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을 끊어내야 비로소 타인인 이성에게 마음을 주고 성인으로서 독립을 하게 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딸들에게 주는 사랑은 땅속으로 스며들 듯 없어지는 사랑이라 아쉬워하지 말기를...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딸 마음 깊숙이 ‘자존감’으로 피어오를 테니.....!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