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후 약방문’ 봇물... 진짜 급한 것은?

메르스 ‘사후 약방문’ 봇물... 진짜 급한 것은?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으려면 국내 의료체계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을 떼어내 보건부나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자는 주장부터 역학 전문가 양성, 병실환경 개선 등 다양한 ‘개혁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간과되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실패한 ‘의료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이다. 메르스 감염이 ‘사태’로 까지 확산된 것은 사실상 의료체계 내의 소통 부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 관료집단, 그리고 정부와 일반 시민과의 소통 부족은 부정확한 정보를 양산했고 수많은 유언비어의 배경이 됐다. 감염병 하나가 불신과 불통의 상징이 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둘러싼 첫 번째 환자와 의료진, 보건당국 간의 소통 문제, 병원공개, 언론 브리핑 등 수많은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거듭했다. 이로 인해 가장 투명해야 할 감염병 퇴치 과정은 불신과 불통을 넘어 국민적 공분마저 불러일으켰다.

메르스는 얼마든지 예방과 조기 진압이 가능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년 전부터 중동지역의 메르스 전파 현황 등을 파악하며 대응책을 마련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응책을 의료현장으로 옮기지 못했다. 보건당국이 의사협회나 병,의원협회를 통해 '문진' 과정에서 중동 방문 여부를 반드시 질문하도록 공지했다면 첫 번째 환자가 병원 3군데를 전전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력 및 발병 시기, 경과 따위를 묻는 문진은 진료의 기본이다. 발열이나 기침 등의 호흡기질환이 오래 지속되는 환자가 메르스 진원지인 사우디 방문 사실을 일찍 털어놓고, 의사는 곧바로 ‘메르스’를 떠올렸더라면 이번 사태는 조기에 종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일선 의료현장에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지 못했다.

의사 출신 질병관리본부장과 연금전문가인 보건복지부장관 간의 소통 부재, 이에 따른 판단 미스 등은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이들이 메르스의 심각성을 일찍 간파하고 강력한 방역 드라이브를 걸었더라면 온 나라가 휘청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건당국의 언론 대응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메르스 발생국인 미국에 비해 한국은 국민과의 소통, 언론 대응에 미숙했다”고 했다. “(메르스 확산세가) ‘꺾일 것이다’, ‘3차 감염 사례는 없다’ 등 팩트(사실)가 아닌 것을 함부로 얘기했다”고 했다. 강 학장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수학했던 예방의학 전문가다.

‘보건부’나 ‘질병관리청’을 만들어도 지금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옥상옥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조직만 비대해져 소통에 방해만 될 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CDC는 2001년 탄저균 사건과 2003년 사스 유행 이후 예산과 인력을 대거 확충하고 위기 상황의 지휘체계를 강화했다.

CDC의 개혁안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조직을 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소통전문가 200~300명이 속한 ‘건강마케팅센터(Centers for Health Marketing)’를 통해 대중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감염병 관련 유언비어가 시중에 돌지 않게 했다.

메르스 사태 초기 SNS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가 떠돌면서 불필요한 공포와 불신이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정보에 목마른 대중들이 정보를 ‘자가 생산’ 하면서 수많은 유어비어를 만들어냈다. 어느 영역에서나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 특히 감염병 창궐이 우려되는 시기에는 더욱 중요하다. 의료커뮤니케이션이 그 어느 분야보다 절실한 이유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들의 대부분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큰 비용이 소요되는 것들이다. 의료커뮤니케이션 강화는 그런 점에서 비용 대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병실부터 뜯어고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의료진과 환자, 의사와 병원경영진, 보건당국 간의 소통부터 시작하자.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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