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전신마취, 언어-추리능력 저하 위험
생명을 다투는 수술이 아니라면 아기 때 전신마취는 부모가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3살 전에 전신마취를 받은 아이들은 학습이나 발달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높다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는 1살 전에 전신마취를 경험한 28명의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또래들을 짝지어 기억능력을 비교했다. 테두리 색상과 위치가 다른 그림을 보여준 뒤 기억해 내는 이 실험에서 마취를 경험한 아이들의 점수가 또래보다 20%나 낮았다. 공간인식 테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는 호주에서 아기 600명(1989-1992년 출생)의 기록을 조사했는데, 3살 이하일 때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아기(321명)는 10살 때 언어와 추론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백명 중 하위 7명 그룹에 속할 확률이 언어는 2배, 추론능력은 1.7배였다. 이들은 메니에르(속귀의 고혈압), 탈장, 포경, 편도선 등으로 마취수술을 받았다.
대상 코호트가 더 넓은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팀이 마취학(Anesthesiology)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76-1982년 사이에 미네소타주의 5개 마을에서 태어나 5살 때 같은 지역에 살았던 어린이 5357명의 교육과 의료 관련 기록을 조사한 결과, 3살 이하일 때 경험한 수차례의 전신마취가 학습장애의 위험인자로 나타났다. 전신마취를 1회 경험한 449명은 학습장애 위험이 높아지지 않았지만, 2회 받은 100명과 3회 이상 받은 44명은 각각 1.6배, 2.6배 높았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하면 아이의 머리가 나빠진다고 단정하긴 아직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관련 연구가 초기단계인데다 마취 탓인지, 수술 탓인지, 수술을 받아야 했던 병 때문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학습이나 발달에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자녀에게 필요한 긴급한 수술을 거부하는 일이 생겨서도 곤란하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얼핏 생각할 때 마취상태에서는 모든 신체활동이 저하되고 호흡이 멈추게 되니까 뇌로 가는 산소량이 부족해져서 뇌세포가 손상되지 않을까 오해할 수 있다”며 “실제 전신마취 시에는 대기 중의 공기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산소가 주입되므로 뇌에 악영향이 생길 수는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만 뇌신경이 성장하는 영유아기는 전신마취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생명을 다투지 않는다면 위험성과 실효성 사이에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서울브레인신경과 이일근 원장은 “아이들의 경우 작은 수술이라도 참지 못하고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전신마취는 분명 발육 상태의 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수면마취나 부분마취로 대체할 수 있는 진료는 전신마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