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료실 책상엔 무엇이 놓여 있는가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라는 뜻을 흔히 ‘사람들끼리의 말을 주고 받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말로 주고 받는 순수한 메시지 외에 표정, 몸짓, 공간, 거리 등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앨버트 메러비안은 『침묵의 메시지』라는 책에서 한 사람이 상대로부터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대부분 표정과 동작을 표현하는 시각적 이미지(55%)와 말투-목소리 톤과 같은 청각적 이미지(38%)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외 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로 인해 영향을 받는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말의 내용보다는 전달하는 상황과 환경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커뮤니케이션의 3대 요소 B(Body)M(mood)W(word)라 불리는 메러비언의 법칙이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비스 교육의 바이블로 여겨진다.
이러한 메러비언의 법칙은 환자와 의사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불문율처럼 작용한다. 환자가 의사의 이미지를 판단하는데 진료 중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인 의사의 태도, 말투, 표정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의 전체 이미지를 판단하는 데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하긴 하지만 조금 더 다른 방식이 요구된다. 이때 환자는 노출된 공간과 인력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첫발을 디딜 때 환대의 느낌에서 시작해 화장실의 청결 정도, 처방전을 전달하는 직원의 태도와 표정, 대기공간, 진찰대의 분위기 등 곳곳에서 환자는 이미지를 가늠하고 그 느낌을 기억회로에 담게 된다. 기억되는 이미지는 곧 좋은 병원의 판단근거가 된다.
환자가 판단하는 ‘좋고 나쁘다’의 병원 이미지는 의사의 정확한 진료와 치료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정보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받아들인 정보가 비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자. 환자가 병원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평균 30분이라 가정할 때 30분 중 의사와의 대화는 보통 5분, 나머지 25분은 의사 외의 사람들 혹은 다른 방도로 커뮤니케이션 하게 된다. 그래서 의사는 장시간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여길 필요가 있다.
병원은 팀워크 프로세스를 갖는다. 의사만 잘하거나 직원만 잘해서도 서비스가 완벽해질 수 없다. 환자가 사용하는 공간과 장비가 부실해도 마찬가지다. 의사나 직원에게서 고객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없다고 여겨지면 구매력을 가진 환자는 자신만의 당당한 권리를 행사한다. 따라서 병원이 좋은 이미지를 갖는 근거가 없다면 환자는 새로운 소비를 행할 다른 병원 탐색에 나설 것이다.
환자는 의사든 직원이든 어느 누구에게서나 합당한 대우로 존대 받고, 청결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진료받고 싶어한다. 또한 의료진이 우선이 아닌 환자가 우선인 병원에서 진정한 고객으로 관리 받고 싶어 할 것이다. 환자는 늘 새로운 병원에서 자신이 다닐 단골병원을 찾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상 까다로운 절차가 없어, 새로운 병원에서 새 의사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병원문을 나서 바로 옆 건물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은 좋아지고 변별력이 높아진 환자로 인해 고객의 마음을 읽고 더 좋은 시설과 서비스로 포장하는 병원이 많아졌다. 경제학의 원리로 본다면 수요자 선택의 폭을 넓혀준 공급자의 순기능이다.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질문을 어떻게 시작해 환자로부터 필요한 답을 얻어내는 가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를 위해 의사가 필요한 정보일 뿐이다. 또한 환자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의료진과 교환되는 정보에 지나지 않다.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범위는 병원을 나가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오래 전 개원한 의사의 책상에는 철이 지난 학회지가 쌓여 있지만 방금 개원한 의사의 책상에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디퓨저가 놓여있을 것이다. 진료하는 동안 모니터 두 개를 동시에 보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의사가 있는 반면, 10초라도 환자와 눈을 더 마주치려고 쑥스럽게 안부인사를 묻는 의사도 있다. 환자를 고객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가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