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자르고 턱뼈를 떼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진료실 공기가 가라앉았다. “혀를 통째로 떼어내고 턱뼈도 일부 잘라내야겠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온 26세 여성 환자는 의사가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눈물만 계속 흘렸다. 환자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다가 탄식 소리를 내뱉기를 되풀이했다.
2006년 3월 구강암이 진행됐다는 진단을 받고 ‘좌절의 수렁’에 빠졌던 환자는 암을 절제하고 자신의 근육과 살로 만든 ‘새 혀’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5년 뒤에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의료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다시 공부해서 현재 병원 물리치료사로서 환자들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매년 200명 수술, 완치율 세계 최고... 덕분에 목숨 건진 유명인 수두룩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최은창 교수(59)는 이처럼 정신이 삶의 바닥까지 추락한 두경부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다. 그는 머리에서 뇌와 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을 수술한다. 매년 200여 명을 수술했고 지금까지 5,000명을 수술대에 눕혔다. 두경부암은 세계적으로 완치율이 50% 안팎일 정도로 까다로운 암이지만, 편도암 80%, 후두암 70%, 구강암 60% 등 평균 70%의 완치율로 세계적인 치료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최 교수 덕분에 살아난 사람 중에는 유명인사도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성악가는 2012년 설암으로 혀를 잘라내고 새 혀로 노래한 지 3년 만인 올 가을 독창회를 연다.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는 2010년 편도암 수술을 받고 4개월 만에 설교를 다시 하는 ‘은총’을 경험하고 나서 지난해 연세대 재단이사 추대에 기꺼이 응했다. 한 대기업 CEO는 지방에서 “암이 진행돼 손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삶을 정리하다가 최 교수의 수술을 받고 살아나서 병원에 익명으로 2억 원을 기부했다가 ‘틀통’났다.
까다로운 수술 불구 환자 미용에도 신경... 상처 숨기는 수술법 잇단 개발
“두경부암은 머리와 목의 10여 가지 희소 암들을 통칭합니다. 암의 종류가 많아 놓치기 십상이어서 병리과 의사의 진단이 아주 중요합니다. 얼굴과 목은 각종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고속도로인데다가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기에 암 수술 때 이 기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요. 또 얼굴은 인격이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의 미용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최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은 병리과, 방사선종양과, 성형외과 등과 협업 시스템이 뛰어나 세계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라도 방심할 수가 없다. 입안은 세균 덩어리이기 때문에 수술이 잘 돼도 세균이 수술 부위를 파고들어 염증이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미용적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써서 수술할 때 머리카락과 얼굴의 경계선 부위를 절개해서 바깥에서 안 보이게 하는 수술법을 잇달아 개발했다. 로봇수술을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같은 병원 김세헌, 고윤우 교수 등과 함께 두경부암 수술에 로봇수술을 도입해서 올해 세계 최초로 1000명 수술을 돌파할 예정이다.
연구에서도 국제적 명성... 로봇수술 관련, 세계 의사들의 ‘교과서’ 펴내
그는 수술만 잘하는 칼잡이가 아니다. 연구에서도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그는 각종 구강암의 림프절 전이에 대한 유형, 예방적 목 림프절 절제수술에 대한 치료근거 등에 대한 연구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2007년부터 국제학술지 《구강암》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010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에 취임해서 인후도 역류질환과 구강암의 치료 지침을 마련했다. 2013년에는 세계 의사들이 참조할 《두경부 로봇수술》 교과서를 펴냈다. 이 해부터 매년 ‘내시경 및 로롯 두경부 수술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는데,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50여 명의 학자들이 참석해 국내 학자 100여명과 정보를 교류한다.
“두경부 암은 빨리 진단 받을수록 치료율이 높아집니다. 2주 이상 쉰 목소리가 지속되거나 궤양이 낫지 않으면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검사 방법도 간단합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예방법이지요. 입안의 만성 염증도 원인이므로 염증은 조기에 치료받는 게 좋습니다. 맞지 않는 틀니 등 부적절한 보철장치도 원인이므로 보철장치는 치과에서 정식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의 몸속 들어가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가”
최 교수는 수술이 좋아 의사가 됐다. 그는 “남의 몸속에 들어가서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입니까?”고 묻는다. 그는 의대 졸업반 때 외과와 정형외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당시 이비인후과 전공의 대장이었던 박기현 전 아주대 의료원장의 권유에 따라 이비인후과로 진로를 정했다. 그는 수술 5년 뒤 “이제 완치됐습니다!”고 이야기할 때가 가장 기쁘다.
그는 곧 상경할 대구의 여성경찰관에게 완치 판정을 이야기할 날이 기다려진다. 그녀는 임신 4개월 째 설암 진단을 받았다. 다른 병원에서는 낙태를 권했지만, 최 교수는 “두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경관은 수술이 끝나고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환자가 둘째를 가져도 되는지 물었을 때 최 교수는 완치 진단 뒤 임신을 권했다. 이제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지났다. 그녀에게 완치 판정을 해줄 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입가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