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168배 빠르게, 2667배 싸게 진단?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2012년 5월 미국 피츠버그 인텔 주최로 대학 진학 이전의 학생들을 위한 최대의 과학경진대회 ‘Intel 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가 열렸습니다. 이 날 잭 안드라카라는 15세 소년이 최고상인 고든 무어 상을 수상했습니다.
메소셀린(mesothelina)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하여 췌장암을 조기 발견하는 검출 기구와 방식을 발명한 것을 인정받아 최고상의 영예와 함께 7만5천달러의 장학금을 수여 받았습니다. 이후 이 소년은 포브스, ABC, BBC 등 전세계 주요 언론들과 인터뷰 하고 명사들이 강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TED에서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에 백악관 게스트로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이 소년은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는 메소셀린을 이용해서 기존의 기술보다 168배 빠르고 26667배 저렴하며 400배 민감하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렵고 진행 속도가 빨라서 진단받은 사람들 다수가 수술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아도 몇 개월 생존하기 힘든 췌장암의 조기 진단법을 15세 소년이 개발하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필자 역시 이 소년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대단한 천재가 한 명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췌장암이 필자의 세부전공 분야가 아니고 2008년 2월에 내과 전문의 취득 이후 회사와 병원에서 진료 이외의 일을 하고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메소셀린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서 췌장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방법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췌장암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소화기 내과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진료 현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췌장암 조기 진단 방법은 아직 없으며 더욱이 메소셀린을 조기 진단에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4년 1월 포브스에 이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포브스는 매년 30명의 30세 미만의 혁신가를 선정하여 30 under 30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데 여기에 소년 잭 안드라카를 포함시킬 지를 놓고 고민했던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결국 편집자는 전문가 패널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소년의 업적이 아직 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로서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편집자는 논문 초안을 제출 받아서 몇몇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의견은 소년이 만들었다는 센서가 논문으로 출판될 만 하고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놀라운 업적이기는 하지만 과학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고 평했습니다. 암 진단 기술 개발 과정에서 작은 발걸음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 소년의 기술이 제대로 개발되었을 때를 예측하여 평가를 했는데 검사 속도, 비용, 민감도 모두에 상당한 과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존 검사법과 비교하는 과정이 객관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큰 이슈는 과연 메소셀린이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기에 적절한 단백질인가 하는 점입니다. 의사들은 CA 19-9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서 췌장암의 치료 결과와 재발 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이것도 전적으로 의존할 정도는 아니며 특히 조기 진단에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소년은 메소셀린이 CA 19-9보다 췌장암 추적에 좋은 마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논문을 읽어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적어도 현재의 의학 지식으로는 메소셀린은 췌장암 진단에 이용하기에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포브스는 기사의 끝 부분에서 “안드라카의 말을 빌리자면 그 동안 있었던 일은 ‘미디어 서커스’(media circus)와 같았다. 안드라카는 “나는 처음으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해보았으며 본격적인 과학 연구를 해볼 수 있었고 미디어에 내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흥분했었다”라고 말했다. 이 소년의 흥분을 받아들여 이를 통해 그를 영웅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TED와 포브스를 포함한 많은 언론 매체들은 암환자들에게 그릇된 희망을, 일반 대중에게는 의학적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는 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게재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첨단 과학 분야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녁 뉴스 시간에 보도되는 내용만보면 암은 지금쯤 이미 완치됐어야 합니다. 하반신 마비가 있는 사람들은 걸을 수 있는 세상이 이미 열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아닐까요? 이러한 결과에는 당사자가 직접 과장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실체보다 과장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엠패티카(Empatica)회사가 만드는 웨어러블인 엠브레스(Embrace)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엠브레스는 일반적인 피트니스 밴드의 센서와 체온 센서에 더해서 피부 전기 활동(Electrodermal Activity) 센서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부 전기 활동은 뇌에서 두려움, 불안, 흥분과 관련된 부위에 의해서 높아져서 특정한 종류의 간질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 장비는 피부 전기 활동 센서를 통해서 간질 발작을 읽어낼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기즈맥(gizmag)이라는 첨단 IT 장비를 소개하는 매체에서는 ‘엠브레스’는 간질 발작을 예측하는 것을 도와주는 최초의 의료 등급 스마트워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엠패티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엠브레스에 대해 “애플, 삼성 및 모토로라의 최신 제품들과는 다르다. 이 제품은 간질 발작의 위험 신호를 알아낼 수 있다.’고 평가 인용문을 게재해 놨습니다.
그런데 와이어드( Wired)라는 유명한 IT 잡지 기사와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보면 피부 전기 활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간질 발작을 예측해준 경우가 한번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엠브레스 제품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는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장비가 간질 발작을 예측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즉, 아직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이 제품은 간질 발작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읽어줄 수 있을 뿐 간질 발작을 예측해 줄 수는 없음에도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그런 기능이 있는 것처럼 알려진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개발하는 제품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로 생각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5년 1월 여러 매체에서는 삼성전자에서 뇌졸중 예고 모자 시제품을 개발했으며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2015년 CES 기조연설에서도 그 컨셉을 소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모자를 이용해서 뇌파를 취득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고 뇌파의 정상 여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도 개발하여 정상 뇌파인지, 뇌졸중의 위험이 있는 뇌파인지 90%의 정확도로 판별해 내는 자체 결과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뇌졸중 환자를 진료하는 신경과 의사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모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뇌파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 의학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만난 신경과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에 뇌파를 측정해둔 데이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들의 이야기와 다르게 삼성전자에서는 이미 이를 기반으로 한 시제품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하고 자료를 찾던 중에 동영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줌인삼성 14편_뇌졸중을 예고하는 모자팀’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입니다. 뇌졸중 예고 모자 개발팀을 다룬 동영상인데 팀원들은 이 영상에서 ‘하지만 아직 뇌졸중을 미리 알려주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최종목표인 뇌졸중 감지에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고 기록했습니다. 뇌파 판별에 대한 실제 보도와는 달리 그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의 실체와 언론에 보도된 내용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는 이보다 많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혐의가 느껴지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이렇게 실체와 언론 보도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디지털헬스케어 제품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거나 FDA 승인을 못하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평가할 기회도 없이 사라져 버려 정확한 상황을 평가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관심과 투자에 목마른 업체가 과장을 하여 언론을 비롯한 투자자, 소비자 모두가 현혹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기사화할 때 제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기사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 의도 반 실수 반으로 과장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장이 반복되고 확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디지털 헬스케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대중은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보지 않는 이상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 할 벤처투자자와 의료계를 실망시키는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업계에 투자를 했는데 약속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들만 나온다면, 또는 거짓말로 드러나 제품으로 나오는 것 조차 불가능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가 다른 유망한 제품에 투자를 꺼리게 되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보고 있는 의료계는 냉소적으로 변하여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서 투자를 유치하여 더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들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연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체를 벗어나는 과장이 반복된다면 이는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려 업계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