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그래도... 환자들의 ‘무지’를 탓하지 말라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결과가 좋던 나쁘던 분명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인과율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법칙은 어디에 적용하던 간에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도치 않은 나쁜 현상과 결과를 두고 그릇된 현상이 생기는 원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결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결과를 유발한 주체에 대해 어리석음을 탓하는 비난과 낙담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패자의 습관적인 논리라 할 수 있다.
병원에서는 어떨까.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투덜투덜하면서 돈을 낸다면 의료진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거나 비용만큼의 합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의 입장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당연한 비용지불을 아까워하는 환자의 무지를 탓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과율의 법칙 해석에서 벗어난 병원의 안일한 태도이다.
경영학에서는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일함을 자각하고 성장을 도모하는데 혁신과 변화를 강조한다. 어떠한 안정적인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혁신과 변화는 늘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에너지 소모를 부추긴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변화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마땅히 해야 할 업무로 받아들인다.
의사에게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혁신과 변화를 강요하기에는 어렵다. 법칙과 규율을 그 어느 분야보다 정확히 따라야 하는 의료계에서 변화라는 경계를 찾기도 애매할뿐더러, 생명을 다루는 그들에게 명분을 찾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윤리적인 소비를 이끌어내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의료인의 상도 아닌가. 여기에서 혁신과 변화를 위한 틈새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의 기술과 하이테크 자본이 동시에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업에서 성장과 혁신은 조금 달리 해석된다. 일하는 의료진들은 고도의 전문서비스 행하면서 환자를 위해 최적의 판단을 내린다. 처방약과 검사를 선택하고, 시술과 수술여부를 가늠하고, 치료시기를 결정한다. 거기에 환자가 의료진을 믿고 성실히 임할 것을 교육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적 판단을 내림에 있어 환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요구사항을 담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환자보다는 의료진의 의견이 선두에 설 수 밖에 없다. 환자가 소비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의사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조금은 불만스런 일이다.
의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논란을 불러 일으킨 판례를 살펴보자. 의료진이 암환자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다 전이 가능성이 농후에 보이는 다른 부분의 장기까지 적출했다. 병원 측과 환자 측은 예정에 없던 장기 적출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게 됐다.
법원은 ‘적출 없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터 설명 없이 적출까지 간 것은 분명 의료진의 과실이 될 수 있다’며 환자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원인은 환자의 암 전이를 막고자 한 의료진의 판단이었지만 결과는 설명 없이 행한 의료진의 오판이라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어찌 됐든, 환자의 건강에 이득이 된 수술이었지만, 설명의 부재로 환자의 선택권이 박탈 된 점을 들어 의료진의 과실로 결론 났다.
그러나 임상적 근거에 따라 추후 재발가능성을 고려한 의료진의 신중한 행동이 환자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의료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의료진들은 환자의 의견을 어디까지 담고 존중해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환자가 소화불량의 증세로 치료받으러 왔다가 10만원 이상의 검사를 해야 한다고 치자. 환자의 증상을 명확히 확인하는 검사임에도 소화제 한 알도 못 먹어보고 검사부터 해야 하는 환자는 왠지 주머니가 털린 느낌이 들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의료진과 병원의 과잉 친절도 왠지 부담스럽다.
의료진은 많은 환자와 사례를 보고 환자에게 최적의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환자가 모르는 판단이라면 그 것은 적정 서비스가 과잉 서비스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의료진이 행하는 모든 의료서비스에는 의문이 남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료서비스에서 가장 주의 해야 할 핵심 사항이다.
환자가 의문을 품는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의료진의 판단을 강요하기 보다는 환자가 보게 될 혜택을 구체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좋은 검사와 치료라는 것은 의료진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느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의 무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의료진이 환자 입장에서 서비스 구매의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이야 말로 의료서비스의 제공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이다. 이것이 구매력을 높이는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전략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의료서비스 산업에서의 혁신과 변화는 다름 아니다. 바로 환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의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