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주 뜻대로... 한숨 돌린 일동제약

외국인 주주 뜻대로... 한숨 돌린 일동제약

 

일동제약과 녹십자 사이의 경영권 분쟁 2라운드는 캐스팅보트를 쥔 피델리티자산운용 등 외국인 주주들이 일동제약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면서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하지만 일동제약의 2대주주인 녹십자가 경영권 개입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분쟁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은 20일 오전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정치 대표이사 회장과 서창록 사외이사, 이상윤 감사를 선임했다. 모두 일동제약 이사회가 추천한 인사들이다. 당초 사외이사와 감사에서 녹십자측 추천 인사와 표결이 예상됐지만, 외국인 주주들이 모두 녹십자 추천 인사에 반대하면서 표결까지 가지 않았다. 녹십자는 지난 달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와 감사로 각각 허재회 전 녹십자 사장, 김찬섭 현 녹십자셀 사외이사를 추천했다.

일동제약은 “예탁원을 통해 의결권을 전달한 외국인 주주들이 일동제약 추천 인사에 100% 찬성한 반면, 녹십자 추천 인사에는 100% 반대 의견을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녹십자 측의 인사를 찬성한 주주는 녹십자를 제외하고는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녹십자의 손을 들어주며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막았던 피델리티가 올해에는 일동제약 경영권 방어의 일등공신이 됐다. 피델리티는 일동제약 지분의 8.99%를 보유하고 있는 3대주주다. 현재 최대주주인 일동제약과 녹십자 간 지분 격차가 1.8%P에 불과해 피델리티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일동제약의 지분은 32.52%, 2대주주인 녹십자는 29.36%로 지분 격차는 3.16%P지만, 일동제약 지분 중 일동후디스가 보유한 1.36%의 지분은 상호출자로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다.

외국인 주주들의 이 같은 선택은 녹십자의 행보에 대한 반감으로 풀이된다. 계열사를 통한 주식 매입과 지주사 전환 반대, 경영권 개입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시장에서 적대적 M&A의 기틀을 다지려는 시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지난 해 1월 일동제약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꿨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피델리티 등 외국인 주주들이 일동제약의 경영 방향성을 신뢰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일동제약으로서는 녹십자의 경영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적대적 M&A의 가능성이 있는데다 중장기 전략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 없는 적대적 M&A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일동제약의 입장이다. 이정치 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지난해 매출 4천억원을 돌파했고, 전년대비 영업이익 감소는 신규설비와 감가상각에 따른 제조원가 상승에 기인한 것”이라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녹십자측은 적대적 M&A 의혹을 꾸준히 부인하고 있다. 녹십자측 주주는 주총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을 가진 회사끼리 협력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유효하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며 “녹십자를 기업 사냥꾼, 악덕 기업으로 몰고, 대표이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비상식적 행위는 양사 발전을 위해 즉각 중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일단락됐지만, 재점화될 여지는 남아있다. 녹십자가 경영 건전성을 위해 상법상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십자측은 “이번 주주제안은 2대주주로서 권한과 의무를 행사한 것”이라며 “일동제약 경영진에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은 주총 후 기자들을 만나 “주주 이익을 위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 전략들을 흔들림 없이 실현하겠다”며 “녹십자와 상생하고, 협력하겠다”고 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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