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기기의 운명 가를 FDA 규제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하루가 멀다 하고 디지털헬스케어 기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기존의 기기에서 기능이 업그레이드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는 기기들도 많습니다. 제품들은 출시되기 전에 일련의 규제와 정책에 의해 ‘시장 진출행’ 티켓을 받지만, 일부는 ‘창고 직행’ 운명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전반을 미국이 선도하고 있는 만큼 미국 FDA의 규제와 원격진료와 관련된 규제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FDA에서 발표한 지침 혹은 규제를 알아보겠습니다.
FDA가 컴퓨터 혹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의료 관련 제품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입니다. 당시 FDA는 컴퓨터 혹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제품 중 어떤 것이 의료기기에 해당하며 이에 대해 어떻게 규제할지 지침을 준비해서 소프트웨어 정책 초안(Draft Software Policy)를 제시했습니다.
FDA는 먼저 감독 범위에 대한 원칙을 제시했는데,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환자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IT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FDA는 하나의 정책을 가지고 이와 관련한 이슈 모두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2005년 정책 초안을 폐기했습니다.
이후 2008년 FDA는 이 가운데 위험이 적은 제품 카테고리를 정의했고, 이를 의료기기 데이터 시스템(Medical Device Data System: MDDS)로 명명했습니다. 이는 의료기기 자체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거기서 나오는 정보를 전송, 교환, 저장, 표시할 수 있는 장비를 의미합니다. 이와 함께 의료기기 데이터 시스템을 위험성이 높아 시판 전 승인이 필요한 Class III에서 위험성이 낮아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되는 Class I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 사안은 최종적으로 2011년에 결정됐습니다.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 및 소프트웨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다시 한번 어떤 것이 FDA 승인 대상인지,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 어느 정도의 과정을 밟아야 할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FDA 역시 이에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를 위해 FDA는 2011년 7월 우선 모바일 의료 앱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모바일 의료 앱에 대한 규제 지침 초안(draft guidance on Mobile Medical applications)이라는 문서로 발표됐고, 외부 기관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3년 9월 25일 규제 지침을 발표했는데 이는 초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발표된 규제 지침은 2015년 2월에 발표된 것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지침 원본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요약 정리한 문서를 참고했습니다.
FDA는 지침에서 기존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의료기기라고 볼 수 있으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바일 의료 앱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모바일 의료 앱을 크게 비규제 대상(not regulated), 규제 대상(regulated) 및 재량에 따른 규제 대상(enforcement discretion)으로 구분했습니다.
비규제 대상은 FDA 법규 하에서 의료기기로 간주되지 않는 의료용 앱을 의미합니다. 의학 서적의 전자책 버전이나 의료진에 대한 교육 자료와 환자 교육 자료가 포함됩니다.
또한, 질병의 진단, 치료, 예방에 사용되지 않으면서 질병에 대한 임상적 의사 결정(Clinical Decision Support)과 무관한 것, 의료 기관에서 사용하지만 일반적인 업무 관리에 이용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규제 대상은 FDA법규 하에서 의료기기로 간주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모바일 의료 앱이라고 하는데
1) 규제 대상인 기존의 의료기기와 함께 사용하거나,
2) 모바일 기기를 의료기기로 바꿀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모바일 기기에 센서를 연결하여 심장이 만들어 내는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고 표시하거나(예: 심전도), 산소 포화도 혹은 혈당 수치를 측정하는 경우,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마이크나 스피커를 이용하여 심장, 혈관 혹은 다른 장기의 소리를 증폭시키는 경우(예: 전자 청진기)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재량에 따른 규제 대상은 의료기기이기는 하지만 환자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서 제한적으로 규제를 행사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일상 생활 속에서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병 관리와 관련하여 코칭이나 조력을 제공하는 앱, 혈압이나 약물 복용력과 같은 건강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한 도구, 질병 상태를 기록해 의료 기관에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재량에 따른 규제 대상 항목을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규제기관들은 가급적 많은 것을 규제 대상으로 묶어놓고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료기기에 해당함에도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도 있는 항목을 만든 것입니다.
규제 대상에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도를 감안하여 일방적으로 규제를 가하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침은 법률 혹은 규제는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FDA의 의료기기 및 방사선 건강 센터 (Center for Devices and Radiological Health)의 디렉터인 Jeffrey E. Shuren은 “기술이 계속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점에 추가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단 명문화된 선을 긋게 되면 오랜 기간 동안 그 안에 갇히게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법제화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FDA는 2012년에 제정된 FDA 안전 및 혁신법(FDA Safety and Innovation Act: FDASIA)에서 규정된 바에 따라서 헬스 IT 조정국(Office of the National Coordinator for Health Information Technology: ONC)및 연방통신국(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과 협력하여 2014년 4월에 헬스 IT 보고서(FDASIA Health IT Report)를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분류했습니다. 새 분류 방식에서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1. 의료 운영 소프트웨어(health administration software)
2. 건강 관리 소프트웨어(health management software)
3. 환자의 진단 및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medical device software)
와 같이 세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됐습니다.
앞서 발표한 가이드라인과 다른 분류 기준을 내세운 것은 보고서 발표 이전에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관련 법안이 발의됐는데 그 법안에서 이렇게 분류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이 중 첫 번째 카테고리는 FDA 관할이 아니며, 두 번째는 FDA 관할이지만 FDA가 규제의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고 세 번째 카테고리에 규제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분류는 헬스 IT의 기능 혹은 목적에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기존에 비규제 대상(not regulated), 재량에 따른 규제 대상(enforcement discretion) 및 규제 대상(regulated)으로 분류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임상 의사 결정(Clinical Decision Support) 시스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합니다. 이는 앞서 나온 규제 가이드라인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라고 명시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은 환자 별 의료 정보의 기반 위에 의학적 의사 결정에 이용되는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정보를 도출해내는 시스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대부분의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이 환자 안전에 미치는 위험이 적기 때문에 규제의 필요성이 적다고 하면서 이들을 두 번째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컴퓨터 기반의 발견/진단 소프트웨어, 환자 침상에서 사용되는 모니터 장비로부터 실시간 알람을 받는 장비, 심전도 분석 소프트웨어 등은 고위험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으로 간주하여 세 번째 카테고리에 포함시킨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향후 다른 연방 기관 및 민간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서 어떤 형태의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이 FDA의 규제 대상이 되는 지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상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법안에서는 모든 종류의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에 대해서 FDA가 전혀 규제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습니다.
FDA는 임상 의사 결정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나름 타협을 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정리하자면, FDA는 기존의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환자에게 미칠 위험에 바탕을 두고 규제를 하겠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 눈 여겨 볼만합니다. FDA의 규제 적용 방침 및 해당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간함으로써 업체들이 불확실성 혹은 불필요한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