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은 높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선조들은 가난해도 평안한 안빈낙도,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을 군자의 삶이라 여겼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객관적으로 삶의 질이 높으면 행복하다 할 수 있는데, 국제비교에서 쓰이는 삶의 질을 따지는 객관적인 기준은 기대수명과 교육, 1인당 GNI(국민총소득)다. 이를 지수화한 것이 HDI(Human Development Index)값이다.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의 객관적 삶의 질 수준은 높은 반면, 주관적인 삶의 질 수준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개발계획(UNDP) 자료를 보면 한국의 HDI는 지난 1980년 0.64에서 2012년 0.909로 증가했다. ‘매우 높은 발전국가’의 2012년 평균값은 0.905였으니 짧은 기간 높은 수준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 셈이다. 전체 185개국 중 12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주관적 행복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WVS(World Value Survey)의 결과는 달랐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 1990년 이후부터 행복감 정도를 나타내는 점수가 정체돼 있다. 4점 척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1990년 1.187이던 것이 1996년 1.248로 다소 높아졌다가 이후 1.2에 계속 머물러 있다. 점수는 1점에 가까울수록 행복의 정도가 크다.
OECD의 종합 행복지수에서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높지 않다. 36개국 중 27위로 하위권이다. 이 지수는 주거와 교육, 고용,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보건,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종합해 산출한 것이다.
객관적 행복과 주관적 행복에 간극이 크다면 문제가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및 국민행복 인식조사’를 보면 행복의 수준은 HDI값으로 단순하게 객관화하기 어렵다.
가구유형별로는 장애인, 노인, 만성질환자, 실업자나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있는 가구는 행복수준이 낮았고, 아동이 있는 가구는 높았다. 또 연령이 높아질수록, 여성보다 남성, 비가구주보다 가구주의 행복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경제활동별로는 상용직보다 고융주나 자영업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행복수준이 낮았다. 직종별로 보면 관리전문직의 행복수준이 가장 높았고, 사무서비스직, 숙련기술직,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 단순노무직의 순이었다.
김미곤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국가의 임무는 객관적 삶의 조건과 주관적 안녕의 상태가 좋은 안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행복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사회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