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날줄 알았는데... 조루 치료제 왜 실패했나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최근 필자는 한 벤처캐피털리스트와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체중 감량 어플리케이션에 대해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성장 중인 모바일 게임의 경우에 사용자가 유료회원으로 가입해 아이템을 구입하면 캐릭터가 힘이 세지거나 속도가 빨라지는 등의 눈에 보이는 가치가 있어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효용이 분명하다. 그런데 체중 감량 앱의 경우 유료 회원이 되었다고 해서 무료 회원에 비해 살을 뺄 수 있다는 효용성이 확실하게 제공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무료로 앱을 내놓고 일부 사용자에게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모델과 관련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디지털헬스케어의 효용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제공하지 못한 제품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헬스케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순히 어떤 측정치를 알려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실질적인 효용을 제공하지 못해서 망한 Zeo
실질적인 효용을 제시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수면패턴을 읽어주는 지오 개인수면관리(Zeo personal sleep manager)가 있습니다. 디지털헬스 시대의 총아로 인정받았으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2013년에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수면 패턴을 측정해주는 장비로 사용자가 띠로 된 장비를 머리에 두르고 자면 수면 패턴을 측정, 분석하여 전용 앱이나 장비를 통해 수면 양상을 알려줍니다. 수면 시간 중 REM수면이라고 하는 수면 시간의 비율이 어떻고 non-REM 수면이라고 하는 수면 시간의 비율이 어떤지 등 수면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이 앱은 400달러의 가격에 팔렸는데 유명한 의료 기기 회사인 존슨앤존슨과 전자 제품 유통 회사인 베스트바이(Best Buy)의 벤처캐피털 자회사로부터 전망을 인정받아 투자를 받았으며 총 2700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또한 ‘청진기가 사라진다’는 책으로 유명한 에릭 토폴 박사가 여러 강연에서 사례로 다루는 등 몸에서 나오는 신호를 기록하고자 하는 Quantified Self 운동가들로부터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Zeo는 실패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가 언급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잠을 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REM 수면 시간이 길어서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는 정도 밖에 알려주지 못한 한계성입니다.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것은 굳이 이렇게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부분입니다.
또한 REM 수면 시간이 길어서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이를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핏빗(Fitbit)이나 조본 업(JawBone UP)같은 엑티비티 트래커들도 어느 정도 수면 측정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죠. 이 가운데 수면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해준다는 것에 대해서 400달러를 지불할 소비자는 많지 않았던 셈입니다.
뚜렷한 효용이 없는 심박 변이도 또 다른 사례로 심장 박동수가 변화하는 정도 (심박 변이도: Heart rate variability)를 통해서 스트레스 레벨을 측정해주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갤럭시 S5와 노트4 스마트폰에 이 기능이 탑재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몇 가지를 보면 이 역시 수면 분석 앱과 비슷합니다.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은 굳이 심박 변이도를 통해서 측정해보지 않아도 본인이 먼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객관적으로 스트레스가 높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본인이 당장 조절하기 힘든 상황이 많습니다. 이 앱이 아무리 유익한 충고를 명시해도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서 사실상 스스로 어떤 조치를 취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소비자에게 얼마나 효용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 없이 하드웨어 성능에 기반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사례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갤럭시 S5의 스트레스 측정 기능을 이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를 크게 내세우거나 홍보한 적이 없는 걸로 보아서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이용하지 않거나, 호기심 삼아 한 두 번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효용에 대한 의문을 뒤집은 얼라이브코(AliveCor)
휴대용 심전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얼라이브코는 초기에 그 효용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한 개의 심전도만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사용하는 기존의 심전도를 대체할 수는 없으며 심장 리듬 이상을 의미하는 부정맥을 진단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얼라이브코는 2010년 10월 1세대 제품 출시 후 최근 3세대 제품 출시하기 까지 심방 세동이라는 비교적 흔한 부정맥 진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라이브코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폰 4S의 카메라를 이용한 아이폰 앱만으로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심방세동을 진단해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굳이 얼라이브코를 살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실제로 미국 의사들이 운영하는 의학용 앱 리뷰 사이트인 [www.imedicalapps.com]에서는 그런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얼라이브코는 스스로의 효용을 강화함으로써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벗어났습니다.
2014년 8월 심방 세동 진단 알고리즘에 대하여 FDA 승인을 받은 것이죠. 이전까지는 심전도를 기록해주는 기능만 있었고 진단은 협력 의사에게 유료로 의뢰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얼라이브코는 심전도 기록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심방 세동에 대한 진단을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난 셈입니다.
2015년 1월에는 정상 심전도 진단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FDA 승인을 받기도 했는데 복잡한 것보다 그냥 심전도가 정상인지를 알기 원한다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효용이 있는 지의 여부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효용성 없으면 소비자들 외면
디지털헬스케어 사례는 아니지만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과 조루 치료제 시장의 엇갈린 운명은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발기 부전 치료제는 최초의 약물인 비아그라 출시 후부터 크게 성장하였으며 현재 우리나라 연 시장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를 본 제약회사들은 이와 비슷한 성기능 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 조루 치료제를 개발하면 대박을 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비아그라보다 약 10년 정도 후인 2009년에 최초의 조루 치료제인 프릴리지가 출시되었습니다.
조루치료제는 2014년 1~3분기 기준으로 국내 매출이 28억원 정도로 같은 기간 매출이 740억원에 달한 발기부전 치료제의 극히 일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기대에 비해서 처참할 정도의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이를 해결해준다고 해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조루가 있는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조루가 성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루를 약물로 해결하는 의학적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프릴리지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비뇨기과 의사의 의견 중에는 조루가 있는 사람들은 이를 질병이라기 보다는 남자의 성적인 능력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제 복용까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일견 서로 비슷해 보이는 발기 부전과 조루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질환 중 하나로 인식한 반면, 다른 쪽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수많은 디지털헬스케어 제품들이 ‘대박을 노린 조루 치료제’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