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기기, 스마트폰처럼 확산될까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가족 중에 암에 걸리는 사람이 생기면 지인을 총동원하여 어느 병원 어느 교수님이 대한민국 최고 명의인지를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척추나 무릎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최고 명의를 알아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수술을 잘한다고 소문난 근처 병원을 소개받고 찾아가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이러한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개념이 제품의 관여도입니다. 관여도란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여 결정하는 지를 의미합니다. 소비자가 많은 관심을 가지면 고관여 상품, 적은 관심을 가지면 저관여 상품입니다.
소비자는 고관여 상품을 고를 때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에야 신중하게 결정을 내립니다. 저관여 상품을 고를 때는 이와는 반대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거나 처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Big4 병원의 암 수술이나 성형수술, 라식수술 모두 고관여입니다. 성형수술과 라식수술은 블로그나 카페 마케팅이 활발하고 가격 할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증 수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중증 수술은 법적으로 가격 할인이 불가능하지만 로봇 수술 같은 경우 비급여기 때문에 가격 할인이 가능합니다.
성형수술과 라식수술이 상업화되었고 중증 수술은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을 찾다 보면 상품의 또 다른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라식 수술은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라식 수술 환자를 보고 수술이 얼마나 잘되었는지를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경험하기 전까지 품질을 알기 힘든 제품을 경험재(Experience goods)라고 합니다. 소비자들은 경험재를 구입하려고 할 때 이미 구입한 사람들의 경험을 찾아보고 그 내용을 근거로 구입 여부를 결정합니다.
성형 수술은 좀 다릅니다. 수술을 받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수술이 잘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사용해 보지 않아도, 시간을 투자하여 노력하면 품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제품을 탐색재(Search goods)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할 때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아보기 보다는 제한적으로 탐색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성형수술의 경우 경험재의 성격도 있기는 합니다.
암 수술은 어떨까요? 암 수술은 소비자(=환자, 보호자)가 질이나 수준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누가 명의인지를 알아보고 수술 받을 의사를 선택하지만 그 의사가 정말로 수술을 잘 했는지 알기는 힘듭니다. 물론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했는지, 아니면 암이 재발했는지를 가지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명의라 해도 수술 후 합병증이 없을 수는 없고 다른 의사들과 비교할만한 객관적인 데이터도 없기 때문에 그 의사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소비자가 실제 사용해 본 다음에도 품질을 파악하기 힘든 것을 신용재(Credence goods)이라고 합니다.
신용재는 브랜드를 쌓기가 힘듭니다. 소비자들이 품질을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 구축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신용재의 브랜드를 쌓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라식 수술과 같은 경험재를 판매할 때는 그 특징과 품질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비자들의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 평판이 곧 경험재의 브랜드이자 가장 강력한 마케팅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식 수술을 홍보할 때 카페나 블로그 마케팅이 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경험재와 관련해서는 잠재 고객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평가업체들이 평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짜로 드러나서 수사 중이지만 라식 수술에 대한 소비자 인증단체가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탐색재를 판매할 때는 소비자의 고려 대상 가운데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탐색 비용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능한 모든 옵션을 고려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탐색재를 판매하는 회사들은 제품 이름만 반복하여 노출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는 홍보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압구정역 출구를 가득 메운 성형외과 광고는 수많은 성형외과 병원 가운데 소비자 선택 리스트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성형수술의 경우 탐색재이면서 경험재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식 수술과 비슷하게 블로그나 카페를 이용한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좀 더 탐색재의 성격이 강한 것이 요양병원입니다. 성형 수술의 경우 이미 수많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경험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특정 요양병원에 대한 정보나 경험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인근 지역 요양병원 몇 군데를 직접 방문하여 입원할 병원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요양병원 숫자가 많아서 근처에 있는 모든 요양병원을 방문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소비자가 방문할 병원 후보 목록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형병원 퇴원 이후 요양병원 입원을 고려하는 환자의 경우, 해당병원의 환자 의뢰 센터에 비치된 병원 홍보 자료를 보고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요양병원에서는 거리 현수막을 통해서 병원 이름을 알리기도 합니다.
암 수술과 같은 신용재는 홍보가 힘듭니다. 소비자가 직접 알기 힘든 품질을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 홍보를 하는데, 암 수술 생존율에 대한 연구 발표나 병원 의사의 출신 의과대학으로 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브랜드를 쌓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용재는 쉽게 가격 할인을 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여 가격이 그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형 수술을 할인해 주는 경우는 많지만 로봇 암 수술은 할인을 해주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상품의 특성은 웨어러블 기기 등을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에 대해서도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세상이 상전벽해한 것처럼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결국 의료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용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마트폰은 사용해보면 성능과 품질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경험재입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헬스케어는 비슷한 기술에 기반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품의 성격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재인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됐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신용재인 디지털 헬스케어가 빠르게 보급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신용재이기 때문에 브랜드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헬스케어 브랜드의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의사들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보급될 가능성이 큽니다.